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15주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렘 8:18-9:1
18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이 병 들었도다 19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 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의 왕이 그 가운데 계시지 아니한가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는고 하시니 20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 다 하는도다 성령강림 후 제15주-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22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 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 1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
응송 | 시 4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 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서신 | 딤전 2:1-7
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 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7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복음 | 눅 16:1-13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 말하되 기름 백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 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 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 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 에게 주겠느냐 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 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 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렘 8:18, 19을 묵상하십시오. 헛된 것들에 마음을 빼앗긴 유다백성 들로 인해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습니까?
② 눅 16:8, 9을 묵상하십시오. 불의한 청지기가 칭찬받은 이유는 궁극 적으로 어디에 있었습니까?
③ 딤전 2:1-4을 묵상하십시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를 해 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기 때문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 총론' 서문에서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보았습니다. 여기에서 '아(我)'는 '주체적 위치에 서 있는 자' 즉 조선인의 입장에서 보면 '조선 백성'이고 '비아(非我)'는 1924년 당시로 볼 때, 조선을 침략해온 일본 제국입니다. 그런데 '아(我)'에는 '아(我)중 아(我)'가 있고, '아(我)중 비아(非我)'가 있다고 했습니다. '아(非)중 아(我)'란 조선인다운 조선인이고, '아(我)중 비아(非我)'란 조선인 임에도 조선인 아닌 삶 즉 친일 행적을 했던 자입니다. 그러니까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임과 동시에, '아(非)중 아(我)'와 '아(我)중 비아(非我)'의 투쟁인 것인데, 이 투쟁은 2022년인 현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은 조선인이면서도 '비아(非我)' 즉 '조선인 아닌 사람'으로 살 수밖에 없었을까요? 눈에 보이는 일본을 현실의 힘으로 느꼈고, 제국의 지배가 영원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세계'만을 전부로 알고 살았던 그들의 무지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살게 만든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유다에도 그렇게 '보이는 세계'에 시선과 마음을 점령당한 채 '비아(非我)'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기원전 6세기 말 예레미야의 조국 유다는 매우 위태로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다는 바벨론으로부터 크게 두 차례에 걸쳐 침략을 당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기원전 597년에 당한 것인데, 이때 유다는 이집트의 힘을 빌려 바벨론에 대항을 했지만, 결국 기원전 587년 더 버티지 못하고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유다는 무조건 항복하는 조건으로 멸망만은 면했습니다. 그러나 대신 바벨론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어야 했습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바로 이 시기 예레미야의 눈물의 고백입니다. 예레미야는 무너지는 조국의 운명을 바라보며 이런 가슴 아픈 고백을 남깁니다.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이 병들었도다 | 렘 8:18
이 짧은 문장에서 우리는 당시 예레미야가 얼마나 비탄에 빠져 괴로워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는 슬픔과 근심으로 마음에 병이 들어있었지만 어떻게 위로를 받아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회개하지 않는 유다 백성들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그들을 회개하지 않게 하는 강력한 실체는 눈으로 볼 수 없던 하나님과 달리 눈에 잘 보이는 우상들이었습니다. '보이는 제국'의 지배가 영원할 줄 알았던 우리 역사 속의 친일파들과 예레미야 시대의 유다인들은 '눈으로 보는 세계'의 지배를 당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참 많이 닮았습니다. 예레미야는 당시 유다 사람들의 영적 현실을 19절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의 왕이 그 가운데 계시지 아니한가"(렘 8:19a) 지난 주 말씀드렸듯이 '딸 내 백성' 즉 히브리어로 '밧 암미(ימע תב)'라는 표현에는 유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애틋하게 담겨 있습니다. 당시 유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딸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과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야훼께서 시온에 안 계시는가? 왕 노릇 그만 하시려고 물러나셨는가? | 렘 8:19 공동번역
이 말의 속뜻은 '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느냐'는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까닭에 어쩔 수 없이 '보이는 우상'에게 마음을 주었다는 나름의 항변입니다. 사실 이 '보이는 우상'의 문제는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미신보다 훨씬 더 근원적이고 숙명적인 문제입니다. 물론 당시 유다인들에게 있어서의 우상숭배란 주로 가나안 토착종교인 바알숭배를 가리키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바알 자체가 아닌 바알이 '보이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는 것과, 그 안에 내제된 '우상(偶像)적 요소'입니다. 바알 안의 '우상적 요소'란 다름 아닌 바알이 약속하는 풍요와 다산(多産) 그리고 장수(長壽)입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옵니까? 그러나 예레미야는 이런 우상을 '헛된 것들'로 규정합니다.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는고 | 렘 8:19b
여기서 '헛된 것들'이란 히브리어 '헤벨(לבה)'의 복수형으로 '허탄한 것들'이란 의미입니다. 허탄한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하나님의 딸 유다인들을 바라보는 예레미야의 심정이 이해가 가십니까? 그런데 사실 마음이 아픈 것은 우리가 예레미야의 이 애타는 심정에 공감하며 살아가기보다는 '보이는 우상'에 더 마음을 두고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레미야의 이 애타는 마음에 공감할 수 있어야 유다를 향해 다가오는 심판이 우상숭배 때문이라는 예레미야의 주장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예레미야의 애타는 마음에 공감할 수 있다면 지난 주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잃을 양을 찾아 나선 목자의 애타는 심정과,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 집안을 뒤지는 여인의 애타는 심정과, 자기를 떠난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대변되는 하나님의 마음에도 역시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 예레미야는 왜 그렇게 마음의 애를 태우고 있는 것일까요? 보이는 우상에 마음 빼앗겨, 돌아서야 할 때 돌아서지 못하면 그들은 영영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 도다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 | 렘 8:20-9:1
마침내 예레미야는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여름도 지나고 추수도 지났는데, 여전히 하나님의 딸들은 회개하지 않고 있었고, 따라서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길르앗에 약이 떨어질 리 없고 의사가 없을 리 없는데, 하나님의 딸들은 끝내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내 머리가 우물이라면, 내 눈이 눈물의 샘이라면, 밤낮으로 딸들의 죽음을 애곡하겠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이 눈물은 값싼 동정이 아닙니다. 예레미야의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공감하는 눈물, 이 눈물이 우리 가슴에 있기를 바랍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거친 세상에 오셔서 고초를 겪으셨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공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안에는 오늘 유다 백성을 향해 '딸'이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눈물겹게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슬픔에서 기쁨으로 바뀔 수 있을까요? 우리가 '보이는 우상'이 아닌 '보이지 않는 본질의 세계'에 시선과 마음을 두고 살아갈 때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서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어디에 시선과 마음을 두고 살아가야 할지를 가르쳐주십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 눅 16:1-3
우리가 잘 아는 '옳지 않은 청지기의 비유'입니다. 옳지 않은 행동을 하다가 주인에게 해고를 통보받은 청지기는 어떻게 하면 청지기 자리를 쫓겨난 후에도 굶어죽지 않고 살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일일이 불러서 계약서를 새로 작성하게 했습니다. 기름 백 말을 빚진 사람은 오십 말로 쓰게 하고, 밀 백 석을 빚진 사람은 팔십 석으로 쓰게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던 청지기였는데, 마지막까지도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돌아와서 이 옳지 않은 청지기를 칭찬했다는 겁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누가는 이렇게 해석해 줍니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 눅 16:8
이 비유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청지기가 저지른 불의(不義)'에 초점을 놓지 않고 '미래를 준비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놓는 것입니다. 그의 종말론적인 삶의 태도를 지혜로운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다른 해석도 가능합니다. 청지기의 이 행동 자체가 지혜롭다는 겁니다. 빚 문서에는 이자까지 포함되어 있었는데, 본래 율법에는 이자를 받지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청지기가 계약서를 새로 작성하게 한 것은 그간 주인이 받아온 이자를 되돌려준 것이고, 그런 처신을 통해서 부자 주인에 대한 평판이 좋아질 수 있습니다. 어떤 주석가는 청지기 자신이 받을 품삯이 이자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러니까 계약서를 새로 쓰게 한 것은 자기 몫의 품삯을 포기한 결과라는 겁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이 비유의 전체 주제는 '돈'으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청지기는 주인이 곧 돌아올 것을 대비해서 '돈'의 문제를 미래지향적으로 매듭짓습니다. 그리고 이 비유의 결론으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 눅 16:9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 눅 16:13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14절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비웃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들이 비웃는 이유를 누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 눅 16:14
그리고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이어지는데,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의 배경도 역시 재물과 돈입니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 나오는 청지기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불의한 청지기는 미래를 위해서 이웃과의 관계를 새롭게 맺었습니다. 빚을 졌던 사람들은 훗날 청지기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는 자기만을 위한 재물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훗날 나사로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주님이 보여주는 건 뭡니까? 청지기도 돈을 좋아했지만 그러나 그것이 미래보다 중요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돈이 좋아 부정을 저지르긴 했지만 그 돈이 자기에게 우상까지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부자는 돈이 우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돈을 섬기느라 그만 미래를 얻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은 명료합니다."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오늘 우리는 사람들이 재물을 하나님처럼 섬긴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1973년에 출판되어 전 세계적으로 6백만 부가 팔렸다고 하는 '모모'의 저자인 '미카엘 엔데'가 죽기 직전인 1994년 2월6일 일본 NHK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확실히 돈에는 신이 지닌 특질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돈은 사람을 결합시키기도 하지만 분열시키기도 합니다. 돈은 돌을 빵으로 변화시킬 수도, 빵을 돌로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돈은 기적을 일으킵니다. 돈의 증식은 불가사의한 것입니다. 게다가 돈에는 불멸이라는 성질까지 있습니다."(녹평 114호, 41쪽)
아무리 돈을 섬기지 말라고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로서 실제 돈이 없으면 힘든 일이 너무 많습니다. 당장 아이들 교육을 시키기도 어렵고 큰 병이 들었을 때 치료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주님께서 '섬긴다'고 표현하신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은 재물을 소유하지 말라거나, 재물을 쳐다보지도 말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재물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섬긴다는 것은 노예가 된다는 뜻입니다. 노예는 자기의 의지가 아니라 주인의 의지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돈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그래서 사람이 돈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면 그건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되고 만 것입니다. 모름지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은 '유사 신神(pseudo-god)'입니다. 주님은 돈이 어떻게 사람들을 지배하는지를 꿰뚫어보셨습니다. 더욱이 건강한 노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어두운 거래를 통해 획득한 돈은 우리 정신을 타락시키고 맙니다. 그래서 주님은 돈을 '맘몬'이라고 하셨고, '불의한'이라는 수식어까지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불의한 청지기는 돈에 지배당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돈을 선용하여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바로 그 점에서 그는 분명히 거지 나사로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와 달랐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돈에게 지배당하지 않고, 돈으로부터 자유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돈이 지배하지 못하는 영역을 더 소중하게 가꾸면 됩니다. 돈보다 이웃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겁니다. 현재보다 미래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겁니다. 세상보다 천국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겁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관심으로 우리의 영혼이 충만하다면 절대 돈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기도하고 말씀묵상하고 예배하는 삶이 즐겁다면 우리는 이미 천국의 삶을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딤전 2:1-4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되 돈과 권력의 우상에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는 임금과 높은 지위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며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말씀합니다. 하나는, 그들도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도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겠습니까? 우리 영혼이 돈의 우상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하나님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차고(렘 8:18), 우리 영혼이 경건과 단정함과 고요함으로 진리에 닿아있으면 하나님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회개는 분명히 우리 내면에 벌어지는 축제이고, 하늘나라에까지 확대되는 감격스러운 사건인데, 우리의 회개를 가로막는 강력한 실체로 인해 우리가 흔쾌히 주님께로 돌아서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非)중 아(我)'로 살지 못하고, '아(我)중 비아(非我)'로 살아버리고 맙니다. '아(非)중 아(我)'가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라면, '아(我)중 비아(非我)'는 그리스도인임에도 보이는 세상에 집착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곧 이방의 헛된 것, 즉 허탄한 돈의 노예로 사는 것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마음은 애가 타고,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이 되고 맙니다.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보이는 우상'에게 마음 빼앗기지 말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총'을 흠모하며 주어진 시간을 경건과 단정함과 고요함으로 항상 진리에 닿아있도록 가꾸시기 바랍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으로 나 아닌 나로 살고 있지 않은가?
② 하나님께 시선과 마음을 두고 참된 자아로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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