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10주 믿음이란,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사 5:1-7
1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 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 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3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 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6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 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응송 | 시 80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서신 | 히 11:29-12:2
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 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 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 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 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 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 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 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 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 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 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 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복음 | 눅 12:49-56
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50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 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52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 과 하리니 53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54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55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 하니라 56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 묵상 | meditatio
① 사 5:4절을 묵상하십시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었도다"라는 말씀은 이스라엘의 상태가 어땠다는 뜻일까요?
② 눅 12:49절을 묵상하십시오. 주님이 땅에 불을 던지신 다는 것은 무 엇을 의미하는 말씀이겠습니까?
③ 히 12:2절을 묵상하십시오. 우리가 믿음의 모범으로 바라보아야 할 주님은 어떤 믿음의 표상을 보여주셨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믿음이란,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
함석헌 선생이 58세이던 1958년에 쓴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6.25 전란을 겪고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질타하는 예언자적인 목소리가 담겨있는 책입니다. 책에서 함석헌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일에는 뜻이 있다. 모든 일은 뜻이다. 뜻 품으면 사람이고, 뜻 없으면 사람 아니다. 전쟁을 치르고도 뜻도 모르면 개요 돼지다. 하나님은 뜻이다. 종교란 '하나님의 뜻을 찾음이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서일과는 바로 이 하나님의 '뜻'과 연관된 말씀들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었도다"(사 5:2) 라며 아쉬워합니다. 여기서 '좋은 포도'란 하나님의 뜻인 공평과 의로움의 열매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공평과 의(義)의 좋은 열매를 기대하며 이스라엘이라는 포도원에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지만 그들은 포학과 잔인함의 열매(사 5:7)를 맺고 말았습니다. 복음서에서 주님은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눅 12:49)라시며 의의 열매를 맺지 못한 세상에 불을 던지겠다고 선언하십니다(눅 12:51). 하나님의 이 심판의 불에 내면이 태워진 사람만이, 좋은 열매로서의 의를 향하여 돌아설 수 있습니다. 서신서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주님이 던지신 불에 의해 참으로 회개한 사람들이 걸어가는 믿음의 여정을 소개합니다(히 11:29-39). 그들은 하나같이 고난을 감내하며 '믿음 때문에' 예수님의 뒤를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구약성경 안으로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 구약성경에는 '포도원의 노래'라는 소제목이 달려 있는데, 이 노래는 2천7백 년 전, 지중해 동편에 면해 있던 유대 땅에서 포도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부른 노래 중 하나입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 사 5:1, 2a
짧은 구절의 이 노랫말에 당시 포도농사와 연관된 전반적인 사연들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농부가 기름진 산에 포도원을 일구었습니다. 그는 땅을 파서 돌을 제거하고 최상품 포도나무 묘목을 그 산에 심었습니다. 그리고 포도원을 지키기 위해 망대도 세우고 포도즙을 짤 수 있는 술틀까지 팠다고 합니다. 모든 준비가 완벽했으니 그는 당연히 좋은 포도열매가 맺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기대가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실망한 포도원 주인의 탄식이 들려옵니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었도다 | 사 5:2b
여기서 들 포도란 변질된 성질의 열매이고, 잘 접목된 가지에서 난 열매가 아니라, 곁가지에서 난 야생포도를 의미합니다. 훗날 히브리서 기자는 이 들 포도의 정체를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히 12:15a), 혹은 '사람을 괴롭히고 더럽히는 쓴 뿌리 같은 자'(히 12:15b)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주석학자인 매튜 헨리는 이 들 포도에 대해 '신앙을 가장한 위선적인 관습'의 사람이라고 했고, 그것은 포도같이 보이지만 시거나 쓰다고 했습니다. 함석헌 선생의 표현대로 하나님은 '뜻'이시고, 신앙이란 하나님의 '뜻을 찾음'이라 할 때, 그는 하나님의 뜻을 가슴에 품지 않았거나 그 뜻을 벗어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방인이 아니었습니다. 이사야에 따르면 그의 정체는 이스라엘 족속이요, 유다 사람(사 5:7)이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이신 하나님은 실망하신 나머지 그를 향해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 사 5:5, 6
"먹힘을 당하게 하겠다. 짓밟히게 하겠다. 황폐하게 하겠다.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다.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겠다." 그들이 들 포도라 일컬음을 받으며, 이토록 듣기에도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된 가장 주된 이유는 분열이었습니다. 본래 한 민족이었던 그들이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열하는 길을 선택하고 마는데,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모든 분열의 이면에는 교만과 극단의 이기주의가 있습니다. 그러면 '좋은 포도 열매를 맺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것에 대해 고대 시인은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와 평화는 서로 입을 맞춘다.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는 하늘에서 굽어본다."(시 85:10-11, 새 번역).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의 진실이 만나고, 하나님의 정의와 사람의 평화가 만나고, 사람이 땅에서 진실을 열매 맺으면 하나님은 하늘에서 굽어보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어려웠던 걸까요? 하나님은 이렇게 실망스러워 하십니다.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 사 5:7
이어지는 말씀에 보면 당시 그들이 자행한 악행들이 소개되는데 어쩌면 그렇게 동서고금이 같은지 모릅니다.
아,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 집을 연달아 차지하고 땅을 차례로 사들이는 자들아! 빈터 하나 남기지 않고 온 세상을 혼자 살듯이 차지하는 자들아! | 사 5:8a 공동번역
그들의 뇌리 속에는 형제도 동포도 없었습니다. 그저 야수처럼 영역 확장 외에는 여념(餘念)이 없었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집과 땅을 사들여 독점하고 마치 세상에 자기들만 살듯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탐욕이 실패할 것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 사 5:8b-10
그들이 욕심스럽게 사들여서 아름답게 꾸민 집들이 죄다 흉가(凶家)가 되어서 인기척이 없게 될 것이고, 소가 열흘 동안 갈아야 하는 넓은 포도밭에서는 고작 23리터의 포도주 밖에 나지 아니하고, 1 호멜의 씨앗을 뿌리면 열배인 10 호멜을 거둘 수 있는 땅에서 1 호멜의 십분의 일 밖에 되지 않는 1 에바만 나리라는 것입니다. 욕심스럽게 집과 땅을 사들인 그들의 탐욕을 감안한다면, 십 분의 일 정도의 추수는 그 자체로 이미 심판인 겁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언급합니다. 그들은 향락에 젖어서 하나님의 일에 도무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 | 사 5:12
그들은 고급스럽게 풍류를 즐기며 살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일에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습니다. 이사야는 당시 사회의 모습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었습니다. 이사야가 이 말씀을 선포하던 시대가 지금부터 2천7백 년 전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이사야는 당시 사회의 모습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관련한 일들입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은 평화를 사랑하시니(마 5:9;고전 14:33), 자신의 시대 속에서 평화를 실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시니(사 5:7), 시대 속에 정의와 공의를 실현하는 일입니다. 세상인 온통 탐욕과 유흥을 향해 질주하더라도(사 5:8, 12),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더 소중한 가치인 생명 살리는 사명에 매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일말의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들이 듣기 싫은 말을 전하는 선지자를 그들은 잔인하게 박해하고 희생시켰습니다. 반면 거짓 선지자들은 오로지 왕과 귀족의 마음을 사기 위해 그들 마음에 드는 메시지만 전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사야는 자기 목숨을 걸고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을 선포한 것입니다. 만약 이사야 선지자가 우리 사회에 와서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을 선포했다면 우리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까요? 브라질 해방신학자인 성정모 교수가 쓴 '시장, 종교, 욕망'이라는 책에 의하면, 시장과 자본이 기존의 유일신 종교의 신(神)개념을 대체해 버렸다고 하는데, 혹시 우리도 나도 모르는 사이 '시장과 자본'이라는 우상(偶像)을 숭배하며 이사야의 말을 거슬려 했을 지도 모릅니다. 이사야 선지자에 따르면 그런 상태를 하나님은 결코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시대에 뜻을 정하시고, 당신께서 하시려는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동시대에 이사야 선지자가 가지고 있던 영적 통찰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높으시다 혹은 거룩하시다는 말의 근거는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 생각과 다르며, 하나님의 뜻이 우리 뜻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향락과 재물과 출세를 사랑해서 그러한 것들에 뜻을 두지만, 하나님은 생명과 정의와 평화를 사랑하셔서 그러한 가치들에 더 뜻을 두고 행하십니다. 지금 이사야는 자신의 하나님 경험에 근거해 이 말씀을 선포하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도 우리시대 속에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경청해 우리 자신을 쇄신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에서 예수님도 이사야와 비슷한 경고를 하십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 눅 12:49
이 불은 우리의 나태한 일상에 던져진 심판의 불입니다. 주님은 '좋은 게 좋다는' 구태한 삶이 아니라, '옳은 게 좋은' 삶을 가르치고 싶어 하십니다. 유대인들에게 불은 심판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의 왕국 또는 샬롬의 세상이 도래하려면, 그 이전에 큰 심판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낡은 세계의 기틀 위에 세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묵시문학에서는 메시아의 왕국이 도래하기 전에 가장 먼저 닥쳐올 심판으로 가정의 분열을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누가가 전해주고 있는 주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 눅 12:53
이 말씀은 많은 적대자들에게 그리스도교가 가정의 분열과 분쟁을 부추기는 집단이라며 비난하거나 박해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습니다. 주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까요? 평화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왜 가정의 분열을 부추기는 듯한 말씀을 하는 걸까요? 낡은 세계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새 세계를 맞아들이는 사람 앞에 놓여있는 가장 큰 장애물은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물론 지금 예수님께서 문제 삼으시는 것은 '가족' 자체가 아니라, 가정이 옳은 결단을 내리는 것에 장애가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주님은 낡은 세계를 사르는 심판의 불이었습니다. 주님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불로 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입고 있는 분열과 탐욕의 누더기를 태워 우리로 하여금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정화의 불로 오셨습니다. 주님은 관용과 사랑이라는 말을 남용해서 이기적인 거짓과 교만의 세력을 편들던 우리의 비겁을 태우는 불로 오셨습니다. 주님은 힘과 무기가 숭상되고 평화의 가치를 소홀히 여기는 이 세상의 전도된 생각을 태워버리는 불로 오셨습니다. 참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불을 던져버린 세상을 단호히 거부하고 우리들이 예수님의 불이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서신서의 말씀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참 믿음의 사람들이 걸어간 삶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 히 11:33-38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난을 감내하며 참 믿음의 길을 걸어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대가로 탐욕을 채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믿음을 대가로 사자 굴에서 살아 나오기를 구하지도 않았고, 박해자의 칼날 피하기를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믿음을 대가로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구하지 않았으며, 고문에서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고,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칼날에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 때문에 예수님의 뒤를 따라 십자가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을 향해 실패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궁극적인 승리를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주님께서 던지신 불이 되어 이 세상을 태우며 살아가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 이 시대에 던져진 불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프랑스 철학자인 가스통 바슐라르가 촛불에 매료당해 '촛불의 미학'이라는 책을 썼는데, 책에서 그는 '촛불은 수직으로 상승하기 위해 혼자 탄다'고 말합니다. 미세한 바람이나 입김에도 불꽃이 흐트러지긴 하지만 촛불은 다시 일어난다며, 그는 촛불의 집요한 수직에의 본능은 차라리 거룩해 보인다고 말합니다. 우리 속에도 촛불과 같은 수직을 향한, 하늘을 향한 열망이 있다면 우리 삶은 주님쎄서 세상을 향해 던지신 불같을 것입니다. 조국이 분단되고 77주년이 지나는 요즘 어쩌면 이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주범이 우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나라가 분단되어 있는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부모와 자녀가, 얼마나 많은 형제와 자매가, 그리움을 형벌처럼 간직하고 비극적인 역사를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이런 역사가 정상이라 할 수 있으며, 어떻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 있습니까? 모든 분열된 것이 하나님의 품 안에서 하나로 일치되는 것만이 정상이고, 그것만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우리는 들 포도 열매를 맺으면 안 됩니다. 사람을 괴롭히고 더럽히는 이 쓴 뿌리 같은 역사의 비극에 적당히 안주하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좋은 포도 열매여야 합니다. 좋은 포도 열매란 분열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좋은 포도 열매란 평화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입니다(마 5:9).
그리스도인은 불입니다. 세상에 던져진 하나님의 불입니다. 촛불이 수직에의 본능으로 상승하기 위해 혼자 타듯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향해 타오르지만, 동시에 세상에 던져진 하나님의 불로서, 거짓되고 위선된 평화를 거부하는 불로서, 그리고 내 형제를 위로하는 따뜻한 불로서 항상 타오르고 있어야 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나는 하나님의 기대를 배반한 들 포도와 같지 않은가?
② 하나님 향한 촛불로, 세상에 던져진 불로 타오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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