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절 하늘이 내려와 땅속에 스며드시니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사도행전 | 행 2:1-13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 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위에 하 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 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됨이냐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 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 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 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응송 | 시 104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서신 | 롬 8:14-17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 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 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 야 할 것이니라
복음 | 요 14:8-18, 25-27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 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 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 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 지께로 감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 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 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 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 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묵상 | meditatio
① 요 14:17, 18을 묵상하십시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어디에 계시 겠다고 요한은 말씀합니까?
② 행 2:2-4을 묵상하십시오. 성령은 어떠한 모습으로 강림하셨으며, 그 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③ 롬 8:16, 17을 묵상하십시오. 성령께서는 무엇을 증언해 주시며, 자 녀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하늘이 내려와 땅속에 스며드시니
오호 땅도 하늘이로세.
오늘은 오순절,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오순절이란 '유월절 후 오십일 째 되는 날'이란 뜻인데, 그날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율법으로 계약을 체결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바로 그 기념일에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신 대로 성령께서 강림하셨는데, 이 성령강림은 하나님의 구원사 전체 드라마에서 결정적으로 의미심장한 사건입니다. 지금까지 율법을 매개로 해온 계약종교는 폐기되고, 하나님과 사람의 신비적 일치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강림의 의미입니다.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각 사람 안에' 계시게 됨으로써 사람은 이제 하나님을 자신 안에 모시게 된 것입니다. 성 아타나시오스에 따르면, 하나님이 사람 안에 계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성 대 바실리오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사람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되라고 초대받은 존재' 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태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창 1:26, 27) 이유인데, 이른바 그것을 '모상(模相)'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모습을 닮았다는 것이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를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의 모상이라 할 때는 신체적, 물질적, 외적인 닮음을 뛰어넘는 그 이상의 존재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하나님은 당신을 영적이고 인격적인 존재로 드러내시는데, 사람에게 하나님의 그 영적이고, 인격적인 형상이 '투영(投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본질의 중요한 그 무엇이 투영(投影)되어 있는 존재', 그것이 다른 피조물들과 구별되는 인간의 내적이고 영적인 특성입니다. 아담이 사탄의 유혹에 빠져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내 존재 안에 투영되어 있는 하나님의 모상' 즉 '하나님의 영과 인격'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것을 되찾아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이고, 마침내 약속하신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가 되심으로서 우리가 영적이고 인격적인 하나님의 모상을 회복하고, 타락 이전의 역사로 되돌아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구원사의 정점은 바로 성령강림으로서 그 완성을 이룬 것입니다. 그러한 전제를 토대로 성령님을 성찰해 보면, 그 분은 인류의 범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모든 피조물 세계를 타락 이전의 원형으로 재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가를 통해 "베니 크레아토르 스피리투스(Veni Creator Spiritus!)", "오소서, 창조주 성령이여!"라며 성령께 외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안에 성령을 모셔 들임으로서, 성령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자신의 몸과 인격과 영이 하나님의 '모상'을 회복해 가는 여정입니다. 오늘 성서일과의 말씀들이 일제히 그 사실을 증언합니다.
복음서에서 주님은, 바로 그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셔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요 14:16) 있게 하겠다고 하시고,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고 약속하십니다. 즉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시면,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셔서 하나님 모상대로 살도록 돕겠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주님의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져서 사도들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행 2:4) 말하기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고 선언합니다. 결국 오늘 복음서의 말씀과 사도행전과 서신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성령의 은총 안에서 하나님의 모상이 완전히 회복된 인간상입니다. 복음서의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오늘 복음서는 빌립이 주님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요 14:8)라고 요청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빌립의 이 요청은 예수님께서 앞에서 하신 말씀에 대한 보다 확실한 설명을 요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앞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했었습니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요 14:7) '예수님을 알면 아버지를 안다'는 말씀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예수님을 알면 아버지를 본 것'이라는 말씀은 빌립으로서는 더더욱 혼란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자신은 사람의 모습을 한 예수를 보았는데, 그것이 어떻게 아버지를 본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요청한 것은, 예수 안에서 아버지가 보인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보다 확실하게 설명해 주시기를 청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왜 빌립은 제자이면서도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을 볼 수 없었던 것일까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분인 까닭도 있겠지만, 빌립의 눈이 하나님을 뵐 수 있는 온전한 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주님의 대답 속에 약간의 책망이 섞여 있습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 요 14:9
주님의 이 말씀은 중요합니다. 영이신 하나님(요 4:24)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체를 가지신 분이 아니기 때문에, 영원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형체 혹은 형상으로 삼으시고 존재해 오셨습니다. 즉 성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자 예수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며(빌 2:6), 성부 하나님의 계시자이셨습니다. 이레네우스는 '이단 반박'에서 그 사실을 이렇게 보충해 설명한 바 있습니다. "아들은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심으로서 아버지에 관한 지식을 드러내줍니다. 아들의 모습은 아버지에 관한 지식입니다. 모든 것이 '말씀'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빌립이 예수님 안에서 아버지에 관한 지식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 요 14:10
9절에서 빌립의 안목 없음을 책망하신 주님께서, 10절에서는 빌립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십니다. 왜 빌립에게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안목도, 예수님 안에 아버지께서 계심을 믿는 믿음도 없었을까요? 그의 영과 육이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육으로는 주님을 따랐지만 영으로는 따르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건 빌립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제자들 모두가 처한 현실이었습니다. 이것은 작은 결핍이 아니었습니다. 제자 됨에 있어 치명적 결핍이었습니다. 창 1:26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여기 하나님께서 당신을 1인칭 복수를 써서 '우리'라고 계시하신 것을 주목해 보십시오. 초대교회의 서신인 '바나바 서신'과 순교자 저스틴을 비롯한 기독교인들은 전통적으로 하나님 자신에 대한 이 복수의 표현을 삼위일체를 예시하신 것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이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 그러하시듯 사람 역시 하나님 안에서 영과 육의 일치를 이루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육과 영이 분리된 채, 영적으로 매우 어두워져 있었기에 빌립과 제자들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도 볼 수 없었고, 볼 수 없었기에 믿을 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고 '그 본체의 형상'이신데(히 1:3),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보지 못하니 그 안목과 믿음 없음으로 인해 갈등만 쌓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반가운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 요 14:16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입니다. '곁에'라는 뜻의 '파라(παρά)'와 '부름 받은'을 뜻하는 '클레토스(κλητος)'가 합해진 단어인데, 해석하면 보혜사는 '곁에서 돕기 위해 보냄 받은 자'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은 성령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 요 14:17, 18
여기서 주님은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부르며 그 분 역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는 너희와 '파라(παρά)' 즉 '함께' 거하심이요, '엔(έν)' 즉 '속에' 계시겠음이라" 앞에서 빌립의 불안함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말씀드렸습니까? 영과 육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육으로는 주님을 따랐지만 영으로는 따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면, 성령님께서 그와 '함께' 그리고 '속에'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삼위일체 하나님과 일치된 영적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존재의 완성'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구원사의 정점은 바로 성령강림으로서 그 완성을 이룬 것입니다. 일찍이 이 진리를 깨달은 시인은 오늘 응송에서 이렇게 찬미했습니다.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 시 104:30, 31
여기에서 '창조하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라(ארב)'는 천지창조를 가리키는 동사입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가 성령을 통해 매일매일 자기 안에서 계속되고 있음에 대한 고백입니다. 시인의 이 고백과 찬미가 성령께서 함께 계시는 우리 내면으로부터 하늘로 향하기를 축복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시인처럼 하나님께서 이루실 나의 새 창조를 기대하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정말 이때부터 '마음을 같이 해서', '오로지 기도에 힘쓰며' 약속하신 것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장이 열리면서 성경은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행 2:1) 라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그때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 행 2:2-4
성령강림은 세 가지 현상으로 나타났습니다. '바람'과 '불'과 '방언'입니다. 이 세 가지 현상은 유대인들의 전통에서 하나님 임재를 나타내는 표시로 여겨졌습니다. 일반적으로 '바람'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고, 삼하 22:16이나, 욥 37:10이나, 겔 37:9-14에서는 죽은 육체를 회복시키는 생기로 묘사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불은 죄악 되고 더러운 것을 없애버리는 '정결의 도구'로서 역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바람은 그곳에 모인 제자들 사이를 관통해 저희 앉은 온 집을 가득이 채우고 있었고, 불은 혀같이 갈라지며 나타나서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임했습니다. 성령은 그렇게 각 사람에게 강림하셨고 제자들의 내면은 성령으로 채워졌습니다. 그때 그들에게 하나의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오순절을 맞아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순례객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제자들이 방언으로 말 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행 2:11) 라며 놀라워합니다. 참 감격스러운 장면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를 그토록 답답하게 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답답함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답답함은 바벨탑 사건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바벨탑을 쌓아 올리던 사람들의 교만은 그만 소통의 장벽을 자처하고 맙니다. 여호와께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는데(창 11:9),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는 것은 이때부터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에 어떤 장애가 발생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약속하신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들이 벌어졌습니까? 성령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대화가 회복하게 하셨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대화가 회복되게 하셨습니다. 여기 진정한 회복과 소통이 열린 것입니다. 성령강림절은 그래서 감격스러운 날입니다. 예수님이 떠나신 자리에 성령께서 오시자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그토록 소망하던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그 감격을 매일 누린 사람입니다. 그는 그 감격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 롬 8:14-17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각 사람 안에' 계심으로써 사람은 하나님을 '자신 안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형상이 자신 안에 '투영(投影)'된 자녀로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카리스마타 수도회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에 이런 노랫말과 음률을 넣어 부릅니다. "하늘이 내려와 땅속에 스며드시니 오호 땅도 하늘이로세."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사람 속에 스며드시니 사람도 하늘 이상을 품고 살게 된 것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렇듯 우리에게 스며드신 성령님 은혜로 하나님의 언어로 말하기를 시작하고, 하나님의 가슴으로 사랑을 시작하며 하나님의 형상이 투영된 존재로서 이 계절을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하나님의 형상을 잃은 채 그대로 살고 있지 않은가?
②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통합된 존재로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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