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부활절 제3주 성사적(聖事的) 사랑에로 부르심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신약 | 행 9:1-6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 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 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 니라 하시니
응송 | 시 30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 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서신 | 계 5:11-14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 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4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복음 | 요 21:1-19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 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 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 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 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 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 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 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 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 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 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 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 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 묵상 | meditatio
① 요 21:15-17을 묵상하십시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에 걸쳐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요 21:18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최종적으로 하신 말씀으로 미루어 그에게 요청된 사랑은 어떠한 사랑이었습니까?
③ 계 5:12을 묵상하십시오.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 '영광과 찬송을 받 으시기에 합당한' 이유는, 그 죽음이 어떤 죽음이었기 때문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성사적(聖事的) 사랑에로 부르심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몸이 무덤 안에 오랫동안 안치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죽음과의 싸움에서 생명이 이겼음을 보여주시기 위해 당신 육체가 생물학적으로 죽었었다는 사실이 입증될 만큼만 무덤에 머무르셨습니다. 성 대 바실리오스의 표현대로라면 무지한 죽음은 그리스도를 삼킨 후에 자기가 누구를 삼켰는지를 깨달았고, 생명을 삼킨 죽음은 생명에 의해 패망했습니다. 죽음이 단 한 사람 아담을 통해 시작되었다면, 생명도 단 한 분 예수님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악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죽음으로 몰고 갔지만, 그리스도는 부활하심으로 사람들을 영원하고 참된 생명에로 인도했습니다. 악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죽임으로써 자신들의 권력을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은 악인들의 속내에 좌절을 안기고 참 생명으로 사는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성서일과의 말씀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로 이끌어갔는지를 보여줍니다. 먼저 복음서의 말씀은 모든 희망을 잃고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 버렸던 베드로가 어떻게 다시 믿음을 회복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대담하게 증언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말씀은 지독하게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사울이 어떻게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복음서의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 요 21:2-3
저녁 무렵 디베랴 호숫가에 제자들이 모여 있는 장면입니다. 이때 제자들의 심정이 과연 어떠했을지 유추(類推)해 보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한 주간 동안 일어났던 끔찍하고 공포스러웠던 일들과 빈 무덤 사건, 그리고 거짓말처럼 들려온 부활의 소문들과 안식 후 첫 날(요 20:19)과 여드레 후(요 20:26)에 놀랍게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셨던 일들 등등 정서적 롤러코스터를 심하게 치른 다음 지금 제자들은 디베랴 호숫가에 서 있는 것입니다. 분명 부활하신 주님께서 처음 그들에게 발현하셨을 때, 주님이 죽기 이전의 몸 그대로 부활하신 것으로 인해 그들은 매우 기뻐했고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 순간, 예수님은 다시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고, 지금은 제자들만 호숫가에 서 있습니다. 당장의 생계와 자신들의 미래가 어찌 될 것인지 현실적인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자기 정체성과 당장의 생계를 염려해야 하는 현실이 어찌 그들에게 혼란스럽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며 배에 오르고, 나머지 제자들도 "우리도 함께 가겠다"(요 21:3)며 따라갑니다. 오랜만에 디베랴 호수에 그물을 내리며 베드로는 과연 고기잡이에만 마음을 집중하고 있었을까요? 육체노동이 얼마나 생각의 나래를 펼치게 하며, 골똘한 상념(想念)의 상태에서 움직이게 하는지 경험해본 사람들은 다 압니다. 아마도 3년 전 이곳에서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와, 이후로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오갔던 대화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로 흘렀을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난 3년 동안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일어난 의미 깊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이 호수에서 예수님은 정박되어 있던 두 척의 배중에서 시몬의 배를 선택해서 오르셨고,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어놓도록 청하신 후 무리를 가르치시는가 하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고도 하셨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낚여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시몬이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 했을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도 지금 생각해 보면 깊은 의미를 담아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눅 5:10). 예수님께서 그의 이름을 '시몬'에서 '베드로'로 바꾸어주신 것도(요 1:42), 예루살렘으로 가던 길 위에서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3)고 물으시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고 물으셨던 것도,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하자,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마 16:17)라고 칭찬하시며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라고 하신 것도 모두가 의미를 담아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수난을 앞두신 밤, 겟세마네 동산에는 베드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요한과 야고보도 함께 있었고 모두가 똑같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만을 콕 집어서 1인칭 단수를 써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막 14:37) 또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는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1, 32)도 당부하시고, 베드로가 이어서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눅 22:33)라고 말하자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눅 22:34)라며 마치 예언을 하듯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장 그날 밤, 실제로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모른다'(눅 22:56-62)고 부인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물을 끌어당기는 내내 베드로의 뇌리 속에 지난 3년 동안 일어난 그 일들이 필름처럼 돌아가지 않았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지금 그물을 내리고 있는 상황도 꼭 3년 전 그날의 데자뷰(deja vu) 같습니다.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요 21:3)라고 요한이 설명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과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눅 5:5)이라고 베드로가 고백했던 '3년 전'의 상황이 그대로 겹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자들이 이곳으로 모인 것도 자기들이 오고 싶어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마 28:10) 하신 말씀을 따라 이곳에 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 요 21:4-6
상황은 점점 3년 전 그 날과 같아지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형제들을 향해 "갈릴리로 가라"고 말씀하신 주님께서,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신 주님께서, 정말 자기들을 3년 전 그 날처럼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주님의 부활'이라는 이 전대미문의 신비와 맞닥뜨리는 제자들 각각의 특징을 보게 됩니다.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 요 21:7
이 짧은 말씀 안에서 제자들의 저마다 다른 성향이 드러납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톰은 '요한복음 강해'에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와 '베드로'를 매우 재미있게 분석해 놓았습니다.
주님을 알아본 제자 베드로와 요한은 이번에도 서로 다른 성향대로 행동합니다. 한 사람은 열정적이고, 한 사람은 관조적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행동파인 반면 한 사람은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주님을 먼저 알아본 것은 요한이었지만, 그분께 먼저 달려간 것은 베드로였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알아본 사람은 관조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였습니다. 하지만 대개 관조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행동으로 반응하는 것에는 비교적 느립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께 먼저 달려간 사람은 열정적 행동파인 베드로였습니다. 교회에는 이 두 유형의 신자들이 조화롭게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관조적 성격의 교우는 주님의 뜻을 파악하고, 열정적 성격의 교우는 주님의 뜻을 실천합니다. 이 조화로움으로 인해 교회는 주님의 뜻을 알 뿐만 아니라 주님의 뜻을 실천하게 됩니다. 계속 말씀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 요 21:9
주님은 밤새 빈 그물질을 한 제자들을 위해 숯불을 피우고 떡과 생선을 굽고 계셨습니다. 주님의 현존에 압도당한 제자들은 그 누구도 '당신이 누구냐'고 묻지 않았습니다(요 21:12). 그렇게 아침식사가 모두 끝났을 때,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십니다.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 요 21:15-19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그 일은 트라우마로 가슴에 걸려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온화한 목소리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십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사랑한다고 세 번 말하자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세 번 당부하십니다. 나를 사랑할 때만 형제도 이끌 수 있다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나를 사랑할 때만 양떼도 이끌 수 있다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진실할 때만, 양을 위해 목숨을 희생할 수 있다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베드로는 그렇게 사랑을 확인해드린 후 세 번 소명을 받는 은총을 입었습니다. 이 일로 베드로는 되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이 육체로 되살아나셨다면, 베드로는 영으로 되살아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체의 죽음을 당하셨을 때,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함으로써 그 영이 죽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영이 살아있으려면 주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서만 소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다른 건 묻지 않았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만 세 번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도 주님께 다른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만 세 번 말했을 뿐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어린이주일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오늘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시는 물음은 교회 공동체에서 어린이와 함께 신앙생활하고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걸까요?" 베드로처럼 절실하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깊고 뜨겁게' 사랑할 수 있고, '참되고 올바르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참 생명에 이르도록' 사랑하는 것입니다. '참 생명을 목적으로' 이끌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맡기신 과업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맡기시는 과업 사이의 완전한 동일성을 봐야 합니다. 내 자녀를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본능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깊고 뜨겁고 참되고 올바르게 사랑하는 것과 많이 다릅니다. 그냥 본능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사람 아닌 짐승들도 다 합니다. 참되고 올바른 사랑은 그 사랑으로 인해 내 자녀가 참 생명에 이르고, 참 생명으로 사는 삶을 살아갈 때만 성립됩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맡기신 사랑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맡기시는 사랑과, 오늘 우리에게 맡겨지는 사랑은 같습니다. 내 사랑의 대상이 참 생명인 구원에 도달할 때만 그 사랑이 깊고 뜨겁고 참되고 올바른 사랑입니다. 구원에 이르도록 이끌지 못하는 사랑은 빈 그물을 걷어 올리는 것만큼이나 공허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도 보면 세 번에 걸친 물음과 대답과 명령이 있은 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사명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 요 21:18
베드로의 순교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뭘 말씀하시려는지 분명합니다. 네 양떼가 구원에 이르도록 사랑하기 위해서는 너도 나처럼 십자가를 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사랑은 '성사적'입니다. 우리 사랑도 '성사적 사랑'이어야 합니다. 왜 우리가 성찬에 참여해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누는 것입니까?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깊고, 뜨겁고, 참되고, 올바르신 사랑을 성사(聖事 sacrament)를 통해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주의 사역에 부름 받는 또 한 사람, 사울이라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는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을 지독하게 박해하던 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를 향해 비쳐오는 빛으로 인해 그가 땅에 엎드러집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행 9:5) 이것이 그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질문이자 가장 그 다운 질문이었습니다. 이후로 그는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합니다. 그렇게 칠흑 같은 사흘을 보내며 그는 비로소 자기 영혼의 실체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아나니아를 통해 그를 치유하시고 변화된 그에게 '복음의 사역'을 맡기십니다. 주님은 결국 베드로와 바울이라는 초대교회 최고의 사도 둘을 세우시기 위해 그들의 오랜 회의와 실패의 밤을 지켜보시고, 그들의 잘못된 행실까지 오랫동안 참으시며, 마침내 그들이 자신과 주님을 향해 눈 뜨고, 진짜 사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았을 때 당신의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요한은 노래합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 계 5:12
모든 죽음이 영광과 찬송을 받기에 합당한 것은 아닙니다. 사랑으로 죽은 죽음만이 영광과 찬송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사랑을 위해 죽은 모든 죽음이 다 영광과 찬송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을 넘어 생명에로 이끄는 성사적 사랑'만이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기에 합당한 것입니다. 오늘 부활절 셋째 주일의 말씀을 통해 먼저 주님을 향한 사랑을 뜨겁게 회복하시고, 그 사랑으로 내 형제와 내 자녀를 사랑하되 깊고, 뜨겁고, 참되고, 올바른 사랑 즉 구원에 이르게 하는 사랑을 감당해 내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구원을 전제하지 않은 맹목적인 사랑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② 구원에 이르게 하는 참되고 올바른 사랑을 감당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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