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사순절 제2주 그리스도인이 걸어가는 길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창 15:1-12, 17-18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 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 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 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8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12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 에게 임하였더니 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응송 | 시 27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서신 | 빌 3:17-4:1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 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 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복음 | 눅 13:31-35
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 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32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 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 지리라 하라 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 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5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창 15:1-5, 17-18을 묵상하십시오. 아브람이 가졌던 두려움의 정체 는 무엇이며 그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은 무엇입니까?
② 빌 3:18-20을 묵상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들과 시민권을 하늘에 둔 자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③ 눅 13:32, 33을 묵상하십시오. 헤롯의 살해를 피해 떠나라는 바리새 인들의 권고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보십시오.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그리스도인이 걸어가는 길
사순절이 시작된 지 어느덧 열흘이 지났습니다. 이 사순절 길을 잘 걸어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야 하듯이 영적 여정인 사순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의 완성을 향해 걷는 사십일 간의 순례입니다. 부활절에 세례를 받으시는 교우의 입장에서는 사순절이 '세례를 받기 위해 자신을 준비하는 시기'라 한다면, 이미 세례를 받으신 교우들에게 이 사순절은 경건과 절제를 통해 세례의 은총을 다시 회복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즉 사순절은 우리가 처음 세례 받았을 때, 감격스러워 했던 그 영적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정화의 시간이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부활의 완성에 도달하기 위해 사순 시기 동안 세례의 은총을 되새기며 자신을 정화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부활은 죽음의 사멸이요, 지옥의 멸망이며, 새롭고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2천 년 전 팔레스티나의 무덤에서 흘러넘친 그 새롭고 영원한 부활생명은 우리가 세례 받던 날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순 시기를 지나는 동안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신 창 3:19절의 말씀을 묵상하며, 흙으로 지어진 육체의 끝을 직시함과 동시에, 흙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롭고 영원한 부활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을 바로 잡으려는 애타는 노력과 수련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 성서일과의 말씀들은 우리에게 그러한 노력과 수련의 여정에 있어서 기준 삼아야 할 것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신앙의 아버지로서의 중요한 자세로서 자기생각(창 15:2)을 버리고 하나님의 언약을 받아들일 것을 요청하십니다.(창 15:3-12, 18)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땅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들'(빌 3:19)에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빌 3:20)라며 '땅'이 아닌 '하늘'을 바라볼 것을 요청합니다. 복음서에서 주님은 바리새인 몇으로부터 헤롯이 당신을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눅 13:31),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다"(눅 13:33)시며 당신께서 걸으실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십니다. 구약의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아브라함 서사 중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와 체결해 주신 언약(言約)입니다. 언약의 핵심은 두 가지였는데 후손과 땅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 언약이 체결되는 장면입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 창 15:1a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러내신 순간부터 하나님께 완전한 신뢰를 두었으며, 그 신뢰에서 물러선 적이 없습니다. 더욱이 오늘 말씀 바로 앞에서 목격되는 아브람의 모습 즉 소돔 왕이 주려는 전리품을 거절하는 태도에서(창 14:21-24) 우리는 그의 내면이 하나님을 향해 바로 섰음을 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가 두려워하고 있음을 드러내는데, 그의 두려움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속에서 감지됩니다. 소돔과 고모라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한 그가 무엇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소돔과 고모라의 복수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고,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계속 침묵하시는 것으로 인한 후손 없는 미래에의 두려움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아브람의 속마음을 모르실 리 없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b) 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그는 두 염려를 다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네 방패요"라는 말씀은 적의 공격에 대한 염려에서 그를 보호해 주시겠다는 말씀으로 이해되고,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라는 말씀은 후손에 대한 아브람의 염려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큰 민족의 복(창 12:2, 7)을 반드시 성취시켜 주시겠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마음은 여유가 없습니다. 마침내 자기 고민을 조심스레 털어놓습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 창 15:2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이 말씀을 원문대로 직역하면 "나는 자식 없이 간다." 혹은 "나는 자식 없이 죽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간다' 혹은 '죽는다'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할락'은 삶의 전체 여정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의 말을 칠십인역(LXX) 본문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보십시오. 저는 이렇게 나이가 먹었고 자식 없이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에서 초조함이 묻어납니다. 고대인들에게 자식이 없다는 것은 자기 존재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인데, 자식 없이 떠나는 슬픔이 큰 것입니다. 더욱이 아브람이 처해 있는 상황은 고대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한층 더 비관적이었습니다. 우선 그는 나그네였습니다. 나그네로 가나안에서 산다는 것은 매일이 살얼음판이라는 의미입니다. 거기에 나이까지 들어가면서 점점 더 자식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자 초조함이 극에 달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 창 15:2b-3
이 말도 직역하면 이런 뜻입니다. "당신께서 제게 후손을 주지 아니하셨으니 제 재산을 저 종이 상속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오랜 기다림과 초조함에 공감하면서도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그의 섣부른 판단과 성급한 결정이 아쉽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한 번 당신의 뜻을 분명히 하십니다.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 창 15:4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네 상속자는 '믿음의 자손'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왜 이런 대화가 오가고 있습니까? 자식을 안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득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밖으로 이끌고 나가셔서 밤하늘을 보여주십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 창 15:5
생각해 보면 참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밤하늘에 촘촘히 수놓인 별 빛들을 보여주시며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시는 겁니다. 이후로 아브람은 밤하늘의 별을 볼 때마다, 이날 밤 맺어진 언약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 순간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 창 15:6
이때 아브람이 믿은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언약이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그 믿음을 아브람의 '의'로 여겨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구약의 말씀은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에 체결된 또 하나의 언약을 보여줍니다.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 창 15:7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에 체결된 언약을 보도하고 있는 이 말씀은 본래는 서로 다르게 전승되던 두 이야기가 하나의 본문으로 편집된 것입니다. 1-6절의 언약이 자손에 관한 것이라면, 7절 이하의 언약은 땅에 관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당신을 가리켜 '땅을 주려고' 아브람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낸 여호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아브람의 의심을 봅니다.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 창 15:8
말씀만으로 말고 '무엇' 즉 '증표'를 달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제물을 준비하게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 창 15:9-11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정성껏 제물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후손에 대한 약속이 별을 매개로 맺어졌다면, 땅에 대한 약속은 짐승을 매개로 맺어집니다. 훗날 교부들은 이 짐승들에 관해 다양한 영적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아를의 카이사리우스는 세 짐승 즉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은 교회 안의 육적인 사람들을 나타내고, 두 날짐승 즉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는 영적인 사람을 나타낸다고 보았는데, 산비둘기는 순결을 나타내고, 집비둘기는 단순함을 나타내며, 이들이 잘리지 않은 것은 영적인 사람은 한 마음 한 영혼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산비둘기와 집비둘기가 잘리지 않은 것은 영적인 사람은 갈라지지 않음을 나타낸다고 보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또 맹금들이 그 사체 위에 내릴 때, 아브람이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은 것은, 참된 신자는 끝까지 참고 견디는 것을 나타낸다고 보았습니다. 장님 디디무스는 해질 무렵 깊은 잠에 빠져 흑암과 두려움에 시달리는 아브람의 모습은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로 즉 '자기 세계'에서 '언약의 세계'로 넘어갈 때의 떨림과 놀라움을 동반하는 공포와 무아경이라고 했습니다.(마크 셰리든 엮음/이혜정 옮김 「교부들의 성경주해 구약성경Ⅱ」 분도출판사. 108, 110쪽)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육의 눈을 뜨고 '보이는 세계'만을 관찰하며 살아가다가, 영의 눈을 뜨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관상하는 삶으로 넘어가는 그 전환시기의 두려움과 떨림은 영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겪어내야 하는 이를테면 성장통 같은 것이겠습니다. 육적 시선에서 영적 시선으로 넘어서는 그 고개를 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의 그 두려움이 그를 하나의 영적 체험으로 몰고 갑니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 창 15:17
해가 거의 기울 무렵 불길이 일었습니다. 그러더니 불타는 횃불이 쪼개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갑니다. 어쩌면 이 횃불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경험했던 불기둥과도 같은 것이겠습니다. 이 횃불은 신앙의 아버지인 아브람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과 앞으로 전개될 '언약이 이끌어가는 삶'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제단 횃불로 나타나신 하나님은 이제 아브람에게 좀 더 분명하게 언약을 주십니다.
내가 이 땅을, 이집트 강에서 큰 강 유프라테스에 이르기까지를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 창 15:18 표준 새 번역
그러므로 이제부터 아브람은 자신의 불확실해 보이는 미래를 육의 눈을 뜨고 자기 판단에 겨워 살 것이 아니라, 영의 눈을 밝히 뜨고 하나님께서 자신과 맺어주신 언약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모든 언약은 하나님의 은총이며, 오늘 우리 역시 이 언약을 바라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아브람처럼 미래에의 두려움에 밤잠을 설치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기에 우리도 뜨거운 횃불로 아브람에게 나타나시고, 흔들리는 그에게 미래의 언약을 체결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 언약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서신서에서 바울은 말씀합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 빌 3:18-4:1
땅의 일을 생각하며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바울은 '하늘을 보라'고, '주 안에 서라'고 당부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그곳에 있으며, 우리의 구원도 그곳에 있다고 말입니다. 그곳에서 주님은 우리의 낮은 몸을 산 위에서 영광스럽게 빛났던 당신의 몸처럼 영광스럽게 변화시켜 주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순절은 바로 그 희망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를 세워가는 절기입니다. 그렇게 결기 있게 걸어야 할 길을 걷는 모습을 우리는 오늘 복음서의 주님에게서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를 출발하셔서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는 중에 몇몇 바리새파 사람들이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 눅 13:31
이 때 예수님께서 정확하게 어느 지점에 계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바리새파 사람들의 말을 근거로 추측하자면 아직 헤롯의 영토 안에 계실 때입니다. 헤롯은 예수가 자기 영토에 있는 것이 항상 불편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손으로 세례 요한을 목 베어 죽였는데, 당시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 혹은 선지자 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예수가 자기 영토 안에 있는 게 얼마나 불편하고 불안했겠습니까? 그래서 바리새파 몇 사람을 예수에게 보내서 겁을 주어 그 땅을 떠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예수님의 일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 눅 13:32, 33
여기에서 '오늘'은 현재를 가리킵니다. '내일'은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입니다. 그리고 '모레' 즉 제 삼일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사역을 완성하시기까지의 기간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말씀은 이것입니다. "그 여우가 나를 살해하겠다고 아무리 협박해도 오늘과 내일 나는 계속해서 내 길을 간다. 오늘과 내일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칠 것이다. 그리고 모레는 십자가의 죽음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선지자가 예루살렘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있겠느냐?" 예수님은 분명히 이 여행의 종착점이 죽음이라는 걸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죽음이 두려워서 그 길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끝내 그 길을 다 걸으십니다.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순절의 목적을 시적으로 잘 표현해 놓은 사순절 전례음악 중에 이런 곡이 있습니다.
자의로 수난을 향해 걸어가시면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도다. "보아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설경에 기록된 대로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그분과 함께 걷기 위해 와서 다 함께 우리의 생각들을 정화합시다.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달립시다. 그분 안에서 이생의 쾌락에 대해 죽읍시다. 그리하여 그분과 함께 살고, 그분의 외침을 들읍시다. "내가 고통 받기 위해 올라가는 곳은 지상의 예루살렘이 아니니라. 나는 나의 아버지 너희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너희의 하나님을 향해 올라가느니라. 너희는 나와 함께 천상의 예루살렘, 하늘 왕국으로 올라갈 것이니라." (알렉산더 슈메만/박노양 「대 사순절」 정교회출판사. 14쪽)
사순 시기는 그런 시기입니다. 죽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과 함께 걷기 위해 우리의 생각들을 정화하고, 그분 안에서 이생의 쾌락에 대해 죽고 그분의 외침을 경청하며, 그분과 함께 사는 시기입니다. 아브람처럼 '불확실한 미래'에 마음 짓눌려하며 자기 판단에 중독되어 살고 있지 않으십니까? 헤롯처럼 자기 죄를 덮기 위해 사람들을 시켜 속마음을 떠보며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사순절은 우리 모두에게 신자가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이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밤하늘에 총총한 별빛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길, 불타는 횃불이 쪼개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날 때, 마침내 아브람이 걸었던 언약에 이끌려 가는 길, 오늘도 내일도 모래도 자기가 걸어야 할 길이라며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걸으신 십자가의 길, 그리고 그 주님을 본받아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며, 주 안에 굳게 서서 길을 걸어갔던 사도 바울이 걸어간 길, 바로 그 길이 우리가 걸어야 할 길입니다. 우리의 오늘과 내일과 모레도 그 길을 따라 흔들림 없이 걸어가는 영적 여정, 언약을 따라 걷는 여정이기를 소망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땅에 집착해 살아감으로서 자기의 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
② 오늘과 내일과 모레라는 시간을 언약을 따라 걷고 있는가?
번호 | 다운로드 | 제목 | Language | 작성일 |
41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6주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
KOR | 2024.11.17 |
41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5주 나를 넘어 하나님께로
|
KOR | 2024.11.10 |
410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4주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
KOR | 2024.11.02 |
409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3주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
KOR | 2024.10.26 |
408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2주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
|
KOR | 2024.10.19 |
407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1주 하나님만이 오직 최선이시다
|
KOR | 2024.10.12 |
406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0주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
KOR | 2024.10.05 |
405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8주 땅의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
|
KOR | 2024.09.21 |
404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7주 내 언어의 원천(源泉) 마음
|
KOR | 2024.09.14 |
403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6주 복 있는 눈, 복 있는 귀
|
KOR | 2024.09.07 |
40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5주 장로들의 전통과 하나님 말씀
|
KOR | 2024.09.01 |
40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4주 제2의 본성을 쇄신하라
|
KOR | 2024.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