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주현 후 제2주 영혼의 광합성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사 62:1-5
1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 할 것인즉 2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3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4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 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 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응송 | 시 36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서신 | 고전 12:1-11
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 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 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 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 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 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 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복음 | 요 2:1-11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 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 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 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 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요 2:11을 묵상하십시오. 주님이 행하신 '첫 표적'을 통해 나타난 두 가지 변화는 무엇입니까?
② 사 62:1-4을 묵상하십시오. 선지자가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 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한 결과는 어떤 것들입니까?
③ 고전 12:2, 3을 묵상하십시오. 우상에게 끌려 다닐 때와, 하나님의 영으로 말할 때의 질적 변화는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영혼의 광합성
콘스탄티노플에 스무 살 쯤 된 조지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미남이었지만, 걸음걸이와 태도와 행동거지는 자기를 과시하는 듯했습니다. 그 때문에 사람의 표면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이 청년에 대해 좋지 않은 추측을 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콘스탄티노플의 한 성직자가 이 청년에게 신앙인이 지켜야 할 수칙과 성(聖) 마가가 저술한 영적 법칙에 관한 책을 주었습니다. 그는 집중해서 그 책을 통독했고, 영적으로 큰 유익을 얻었습니다. 특히 세 단락이 그의 마음에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첫째는 "영혼의 병 낫기를 원한다면, 양심에 주의를 기울이고, 양심이 말하는 대로 행동하십시오. 그것이 유익할 것입니다"였습니다. 둘째는 "계명을 실천하기도 전에 성령의 은혜를 받으려 하지 말고, 계명에 순종함으로써 성령에 의해 활력을 얻으십시오"였습니다. 셋째는 "영적인 이성을 획득하지 못한 채 표면적으로 기도하기보다는, 내면의 눈을 떠서 주님의 아름다움을 보십시오"였습니다. 그는 스승이 준 규칙을 실천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자신의 양심이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 많이 무릎 꿇고, 몇 편의 시편을 더 낭송하고, 가능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기도하라." 그는 양심에 복종했고, 양심의 소리가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여겨, 양심이 제안하는 것을 모조리 행했습니다. 이후로 그의 저녁기도의 분량은 엄청나게 증가했습니다. 서서 기도할 때는 두 발을 붙이고 움직이지 않았고, 마음으로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기도할 때 위로부터 밝고 거룩한 빛이 내려와 그의 방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는 초본질적인 빛 안에 용해되어 자신이 빛이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감격이 마냥 지속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어둠과 무감각에 빠졌고, 하나님께 말했던 것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전보다 더 큰 악에 빠졌고, 주님의 말씀을 전혀 듣거나 이해한 적이 없는 것 같은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훗날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태만 때문에 깊은 지옥에 빠졌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할 수 없는 자비를 베푸셔서 나를 망상에서 끌어내시고 깊은 악에서 끌어올려 주셨습니다."
온전한 회심과 변화 속에서 한결같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가 결코 쉽지 않음을 잘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우리 역시 이 청년과 유사한 갈등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때는 은혜와 감격 속에 성결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어떤 때는 세상 유혹의 공격에 꺾여 깊은 태만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오늘 성서일과의 말씀들을 읽으면서 모든 그리스도인의 실존적 과제인 이 물음에 대한 성서적 대답을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공생애 첫 번째 이적이신 가나 혼인잔치 집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화된 현장을 봅니다. 요한은 이것을 '표적'이라고 불렀습니다. '표적(세메이온 σημειον)'이란 이적이나 기적을 넘어 그 안에 의미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이 표적은 순전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고, 이 표적을 통해 물이 포도주로 변화된 사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변화된 모든 것은 처음 상태보다 더 우수함을 보여줍니다.(요 2:9-10) 구약성경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향해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할 것"(사 62:4)이라며, 이스라엘의 새 이름을 제시합니다. '헵시바'는 '나의 기쁨이 그녀 안에'라는 뜻으로서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쁄라는 '결혼한 부인'이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를 뜻하는 말씀입니다. 황무지와 같은 사람의 마음도 하나님께서 일구시면 예수님의 신부요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이 이방인으로 있으면서 말 못하는 우상에게 끌려 다닐 때(고전 12:2)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주(主)시라' 고백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 때(고전 12:3)를 비교합니다.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큰 변화는 말 못하는 우상에게 덧없이 끌려 다니지 않고, 나의 '주(主)'이신 예수님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먼저 복음서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 요 2:1-2
갈릴리 가나에서 혼인잔치가 있었습니다. 갈릴리는 예루살렘이나 유다의 다른 마을과 달리 이사야 선지자의 표현에 따르면 '이방의 갈릴리'(사 9:1) 즉 이방인들이 사는 마을이었습니다. 요한은 '예수의 어머니가 거기에 계셨다'고 먼저 말하고, 이어 '예수와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요 2:2)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합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단지 손님으로만 초대된 것이 아니고, 혼인잔치집의 일을 거들기 위해 그곳에 왔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이 결혼식에 참석하셨을까요? 이미 700여 년 전에 이사야는 그 이유를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시기 위해서'(사 9:1)라고 예언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한은 이 이방인 마을의 혼인잔치 집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이레적일 만큼 자세히 보도합니다. 대개 요한복음의 문체가 간결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사흘째 되던 날'(요 2:1)이라는 시기에 대한 소개와 돌 항아리 크기와 개수(요 2:6)까지 자세히 묘사한 이 사건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흘째 되던 날'이라는 시기에 대한 소개로부터 시작됩니다. 여기에서 '사흘째 되던 날'이란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신 후 사흘째 되던 날로 계산해야 할 것입니다. 요한에 따르면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후 첫째 날은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님을 따라가서 함께 묵습니다(요 1:39-40). 둘째 날은 빌립과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나고(요 1:43-51), 셋째 날 즉 '사흘째 되던 날' 바로 오늘 혼인잔치 집에서의 일이 생긴 것입니다. 이 '사흘째 되던 날'이 중요한 이유는 이날 혼인잔치 집에서 보이신 표적이,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 말씀하신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요 1:50)하신 약속의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첫 소개는 세례 요한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눅 3:16;요 1:29). 그리고 두 번째 소개는 열려진 하늘로부터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눅 3:21-22). 그리고 세 번째 소개는 그리스도 자신께서 직접 표적을 통해 이루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표적은 잔치집의 포도주가 떨어진 시점에 이루어졌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 요 2:3
어머니 마리아는 포도주가 떨어진 이 순간,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초대받은 사람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고,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수도 있고, 당신 아들의 관대함이 드러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난처한 일을 아들 예수께 부탁할 만큼 어머니 마리아에게는 아들의 신성(神性)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긴장하는 것은 이때의 예수님의 반응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 요 2:4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마치 예수님이 어머니의 말씀을 무지르신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묵상해보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을 태어나게 하신 어머니의 뜻을 무지르셨다기보다는, 아직은 당신의 신성을 드러낼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은 마리아에게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신성이 '여자' 즉 마리아를 만드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거절은 이 사건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절반은 어머니 마리아의 관심사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마리아의 도발로 이어집니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 요 2:5
어쩐 일인지 어머니 마리아가 물러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아니라고 말씀하시지만, 어머니 마리아는 사람들이 곤경에 처해진 이 순간이 예수님의 신성이 드러날 때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더 이상 어머니의 때 이른 성급함을 거스르지도 제지하지도 않고 순종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일꾼들에게 항아리마다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시고, 그것을 떠다 연회장에게 주라고 말씀하십니다.(요 2:7, 8) 난감해하던 연회장은 갑자기 등장한 포도주에 놀랐고 또 그 맛이 너무 좋아 놀랐습니다.(요 2:9, 10) 이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때때로 곤경에 처한 형제나 이웃을 볼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어머니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신뢰하고 조르고 재촉하는 일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아직 당신의 때가 아니라고 하셨지만, 그러나 '때'에 대한 당신 뜻을 접고 어머니의 마음을 받아들입니다. 가인 로마누스의 '찬가집'에 보면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이런 감동스러운 대화가 오갑니다.
얘야, 대답해다오. 시간을 측량하여 통제하는 나의 아들이자 주님이시여, 너는 어찌하여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냐? 계절의 구분을 정해놓은 네가 어찌하여 계절을 기다리는 것이냐? ... 어찌하여 내가 청한 기적을 행할 때를 기다리는 것이냐?"
공경하올 동정녀시여, 당신께서 말씀하시기 전에 그들에게 포도주가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일을 해결하려는 어머니의 마음을 다 알고 있습니다. 거룩한 어머니, 기다림의 의미를 배우십시오. 그러나 부모는 자녀에게 공경 받는 것이 당연하므로 어머니, 당신께 순종하겠습니다.
이 순종과 당신 가슴 속의 사랑이 혼인잔치 집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이때 연회장의 반응을 보십시오.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 요 2:10
그의 이러한 반응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 됨에 대한 궁극적인 성찰을 갖게 합니다. 우리도 참된 그리스도인을 보고 싶어 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 연회장과 같은 반응을 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세상살이에 취해 참된 신앙인을 보지 못했는데, 하나님은 지금까지 좋은 그리스도인을 남겨두셨군요!"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듯이, 내 악한 본성이 예수님을 통해 새로워지는 단호한 변화가 있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것은 작은 변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본질적인 변화입니다. 물에서 포도주 맛이 난 것이 아니라, 물이 완전하게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도 존재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그리스도로부터 비쳐온 밝고 거룩한 빛이 우리의 내면을 가득 채우시면, 우리 역시 존재의 질적 변화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축제적인 삶입니다. 이 축제적인 삶이 회복되는 것을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었습니다.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 사 62:1-3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히브리인들 눈에 조국 예루살렘은 옛날의 영광이 다 사라진 채 참담한 폐허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만 슬픔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그런 히브리인들을 향해 이사야 선지자가 오늘 구약의 노래를 불러주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시온이 슬픔에 잠겨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원의 빛을 횃불같이 비추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사 62:1) 그리고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왕관처럼 빛날 것이라고 합니다.(사62:3) 이사야는 계속 이어서 노래합니다.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 사 62:4, 5
헵시바는 '내 기쁨은 그녀에게 있다'는 뜻으로 '너희는 내 기쁨의 대상이 되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쁄라는 '결혼한 부인'이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나타났던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비치면, 우리는 그렇게 혼인잔칫집의 축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무엇이며 성도는 누구입니까? 변화를 통해 축제가 이어지는 곳입니다. 죄를 정결케 해 주던 물이 변하여 생명을 살리는 포도주가 되었듯이, 죽음의 그늘이 짙게 드리운 세상에서 생명의 축제를 이어가는 곳입니다. 서신서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그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설명합니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 고전 12:1, 2
이것이 바로 변화되기 이전의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변했습니까?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 고전 12:3-7
우리의 모든 변화는 성령의 임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영으로 말할 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 가운데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살아가는 사람, 그리스도인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다는 건 단순히 부르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모든 생각과 신념을 주님께 일치시켜 철저하게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뮌헨에서 바이올린 제작 아틀리에를 운영하고 있는 '마틴 슐레스케'가 '가문비나무의 노래'에서 '정신의 광합성'이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무의 잎은 하나하나가 모두 '공장'입니다. 그 공장에서 보이지 않는 빛이 에너지로 바뀝니다. 이것이 바로 광합성이지요. 대기 중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던 탄소는 광합성을 통해 눈에 보이는 물질이 됩니다. 이렇게 태양에너지는 삶 속에 스며들고 생명이 됩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빛을 비출 때, 우리 안에서도 정신의 광합성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빛이 우리 안에서 구체적인 삶으로 변하는 거룩한 과정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에게 억지로 빛을 비추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영은 우리의 뜻을 존중합니다. 받아들일 마음이 있는지 묻고, 우리 내면의 대답에 귀 기울입니다. 우리가 어둠 속에서 마음을 닫고 있으면 억지로 강요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받아들이고자 마음을 여는 사람은 나뭇잎을 펼치고 빛을 향해 나아가는 나무처럼 생명을 펼치게 됩니다."
우리 안에는 영혼의 광합성이 끊이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빛이 내 영혼에 스며들어 신앙의 에너지로 바뀔 때, 영혼의 광합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오늘 복음서의 기적 이야기는 예수님의 빛이 내 안에 오셔서 일으키실 '영혼의 광합성'의 서곡이 되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지속적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우리는 갈수록 빛 좋은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고 서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내면에 변화가 이루어지고 매일의 삶은 축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참된 돌아섬 없이 버림받은 자, 황무지로 살고 있지 않은가?
②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듯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변화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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