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주현 후 제1주 당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사 43:1-7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 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 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 여 주었노라 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5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 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응송 | 시 29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서신 | 행 8:14-17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 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15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복음 | 눅 3:15-17, 21-22
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 가 심중에 생각하니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 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 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사 43:1을 묵상하십시오. 이스라엘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이사야 선지자는 어디에서 찾고 있습니까?
② 눅 3:16을 묵상하십시오. 물로 세례를 베풀던 세례 요한은 자기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께서 오셔서 무엇으로 성령을 주신다고 말합니까?
③ 행 8:14-17을 묵상하십시오.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음에도 그들에게 결핍된 한 가지는 무엇이었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당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
교회는 전통적으로 1월 6일을 '주현절'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현 대축일'로 기념합니다. '주현(主顯 Epiphany)'이란 어원은 그리스어에서 온 것으로 '발현(發現)' 혹은 '현현(顯現 manifestation)'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무엇' 혹은 '누군가'가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주현절에 있어서 '알려지지 않은 그 분'은 이 세상에 태어나시기 전까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주현절 제정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구세주로서 당신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신 것을 기념하는 것에 있습니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각각 2세기경부터 낮이 확연히 길어지는 동지(冬至)로부터 13일 후인 1월6일을 성탄일로 지냄으로서 예수님께서 참 빛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다가 동방교회는 3세기경부터, 서방교회는 4세기경부터 1월6일을 '성탄일'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공현 대축일'로 기념하기 시작했는데, 이날 동방교회에서는 가나혼인잔치에서의 첫 이적과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신 것에 더 무게를 두어서 경축했고, 서방교회에서는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님을 방문한 것에 더 무게를 두어 경축했습니다. 오늘날에는 동방정교회와 로마가톨릭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공히 주현절이 오면 세 가지 신비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신비는 동방박사들이 온 세상을 대표해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한 것, 두 번째 신비는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실 때, 그분이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계시해 주신 것, 세 번째 신비는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 초대 받아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첫 표적입니다. 이 세 가지 신비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주현(主顯) 감사송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오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희 구원의 신비를 드러내시고, 만백성에게 빛을 보여주셨나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죽음의 운명을 지닌 인간으로 나타나게 하시어, 그분의 불사불멸의 힘으로 저희를 새롭게 하셨나이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숨어 계시는 하나님'(사 45:15)으로 표현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당신을 감추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죄가 사람들의 눈을 가려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만들었다는 의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을 발견하고 구원의 신비 안으로 들어오기를 열망하셨습니다. 그래서 각 시대마다 동시대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나타내시려고 노력하셨습니다. 바로 그 열망과 노력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주현 후 첫 번째 주일인 오늘의 성서일과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당신을 '이스라엘을 창조하신 여호와'(사 43:1a), 그리고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여호와'(사 43:1b)로 나타내시며, 이스라엘이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함께 할 것(사 43:2)이며,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도 타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오래 전 선지자의 음성으로 들려왔지만, 그러나 성령의 은총 안에서 현재화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시던 한 장면 안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나타내시는데, 우리는 그 하나의 장면에서 삼위일체 하나님 신비를 목격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리며(눅 3:21),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성자 위에 강림하시더니",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하시는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눅 3:22). 그리고 서신서의 말씀은 초기 그리스도인들 위에 성령으로 임하신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말씀을 받았지만(행 8:14), 그러나 아직 그들에게는 성령이 내리시지 않았고,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만 세례를 받고 있었습니다(행 8:16).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이 성령 받기를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께서 임재 하셨습니다(행 8:17). 이렇게 주현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각각의 모습으로 당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과 만나는 절기입니다. 먼저 구약성경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 사 43:1a
이사야 40장에서부터 55장까지는 '제 2이사야'가 선포한 말씀으로써, 제2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한 시기는 지난했던 바벨론 포로 시기가 끝나가던 무렵이었습니다. 이때 바벨론은 제국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메대와 리디아, 이집트 등과 패권을 다투는 과정에서 쇠퇴를 거듭하다가 BC 539년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게 굴복해 버리고 맙니다. 그러한 역사의 격변기에 제2 이사야가 활동을 하는데, 그가 불렀던 '여호와의 종의 노래' 를 보면 그가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비록 쇠퇴기에 있다 해도 아직 바벨론의 서슬이 퍼런 때,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했으니, 바벨론은 이 선지자를 반정부 활동가로 지목했고, 그에 따른 박해가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박해 중에도 그의 메시지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로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그가 구원의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가 전한 말씀에는 다양한 고백들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고백, 그리고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한 고백,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한 고백 등입니다. 이 고백들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매우 따뜻한 분위기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먼저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야곱아' 하고 부르시고 '이스라엘아' 하고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사 43:1) "야곱아", "이스라엘아" 라는 이 한 쌍의 호칭은 언약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각별하신 사랑을 애틋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어지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입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 1, 2장을 연상시켜주는 것으로 여기에서 강조되는 것은 여호와는 '그들을 지으신' 창조자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절망으로부터의 탈출이, 바로 이 사실을 알고 믿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 창조 신앙이 우리에게 말하려는 중심 메시지는 저 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바벨론 제국에 주눅 들어 있었고, 그들로부터 벗어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포기와 회한과 절망에 찌들려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창조 신앙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를 비롯한 동시대의 선지자들은 제국의 왕들이 아닌,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선포하며,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바벨론 제국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부단히 설득했습니다. 오늘 말씀 1절과 5절에 보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내 삶을 파괴시키는 대상을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국가 권력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현실들에 속아서 두려워하지 않도록 우리를 창조 신앙에로 이끌어 갑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자세히 묵상하다 보면 이사야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고백하기보다 '야곱을 창조하신 하나님', '이스라엘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같은 창조주 하나님이지만 여기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야곱을 창조하신 하나님', '이스라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란 한 민족을 탄생시키시고 섭리해 오신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이 고백에는 하나님 사랑의 보편성을 뛰어넘는 특별한 관계 속에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한 고대 시인은 시 139:16에서 자기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본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단 한 순간도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시는 사랑과, 콕 집어서 내 이름을 불러주시는 그 애틋함 말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바벨론 제국에 주눅들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을 걸어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신다'는 이 표현은 이사야의 메시지의 '현실성'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막연하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 '내 곁에' 계시면서 '말을 걸어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 사 43:1b
여기에서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와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라는 이 두 동사는 완료형입니다. 소위 '예언적 완료형으로서', 이미 이루어진 사실을 선포한 것입니다. 더욱이 이 말씀에는 '너' 그리고 '나'라는 인칭대명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영적 무지와 무감각에 빠져있을 지라도 말씀하는 '나'를 '너'는 잊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는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하나님의 행동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또 하나님의 자기소개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 사 43:2, 3a
'물 가운데로 지날 때'라든지 '불 가운데로 지날 때'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극심한 위험이나 재앙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되던 은유(隱喩)입니다.(시 66:12) 특히 '물 가운데로 지날 때'라는 표현은 이스라엘로서는 자연스럽게 출애굽을 떠올리게 하는 모티브이기도 했습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현재에도 나는 너희를 물과 불 가운데서 구해 낼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자기소개가 오늘 우리에게도 현실적인 힘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복음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제2 이사야를 통해 소개하신 바 '이스라엘의 구원자'를 기다리는 유다 백성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 눅 3:15
여기에서 '백성들'이란 희랍어로 '라오스(λαός)'로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집단'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바라고 기다리므로'라는 표현은 그들이 종말론적 메시아 기대를 가슴에 품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그렇게 무려 400년을 바라고 기다렸는데, 그 바람과 기다림의 시간은 그들에게는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이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그들은 '유다의 암흑기'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던 중 광야에서 세례를 주는 요한을 보면서, 그들은 심중에 "혹 그리스도신가?"(눅 3:15) 하는 기대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요한은 놀랄만한 성덕(聖德)을 보이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며 마음 설레 하고 있었습니다. 요한이 주님 앞에서 겸손하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의 기대와 시선이 자신에게 크나큰 유혹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요한은 백성들의 엇나간 기대를 수정하며, 예수님을 그들이 그토록 바라고 기다리던 바로 그 메시아라고 소개합니다.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 눅 3:16, 17
요한은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사역과 예수님 사역의 차이를 비교해 보여줌으로써 예수가 바로 그들이 기다리던 그리스도이심을 보게 합니다. 나는 '물로서' 회개의 세례만을 베풀었지만,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은 물로 세례를 줌으로써 과거에 지은 죄를 회개하도록 이끌어주는 것까지만 할 수 있지만, 주님은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하셔서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에 참여하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를 우리는 오늘 서신서의 말씀을 통해 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 행 8:14-17
빌립의 전도를 통해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베드로와 요한을 그곳에 보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보니까, 사마리아 사람들이 세례를 받기는 받았는데 아직 그들 중 아무에게도 성령이 내리시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안수했더니 그들이 성령을 받더라는 것입니다. 왜 성령으로 받는 세례가 중요할까요? 그래야만 예수님께 일어났던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 일어났던 그 일이 무엇인지 오늘 복음서에 잘 그려져 있습니다. 영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누가가 그려주는 장면을 묵상해 보십시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 눅 3:21, 22
앞에서 말씀 드린 대로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 있는 교회들이 주현절이 오면 기념하는 세 번째 신비 중 두 번째 신비가 바로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신 이 장면입니다. 이 장면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이 순간 예수님께 일어난 일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제라드 데이빗(Gerad David)이 1505년에 그린 '예수님의 세례'라는 성화에 보면 한 장면 안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함께 묘사되어 있습니다. 4세기 서방교회의 4대 교부 중 한 사람이었던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AD 340-397년)'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삼위일체의 신비가 드러났다"고 말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대표적 신학자이자 교부인 '오리게네스(Origenes, AD 185-254년 경)'는 "하늘이 열림은 복음서의 나머지 부분을 여는 표제다"라며 "열린 하늘은 죄의 용서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라고 했습니다. 참 하나님이시고, 참사람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 그 아들을 사랑하시며 기뻐하시는 성부 하나님,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 아들 위에 강림하신 성령께서 타락한 인간들이 세례를 받음으로 죄의 용서를 얻게 하시고, 성령세례를 받음으로 예수께 일어났던 바로 그 일, 즉 '삼위일체 하나님이 한 자리에서 임재하시는 놀라운 은총'이 우리에게도 일어나도록 하셨다는 사실은 참으로 신비 중의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현절의 복음은 그 놀라운 신비 가운데로 우리 모두를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이후로 물로 받는 세례는 성만찬과 함께 교회의 핵심적인 성례로 자리를 잡았는데, 특별히 물로만 받는 세례가 아닌, 성령이 임재하시는 세례를 통해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을 한껏 덧입은 존재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오늘은 바로 그 기쁨을 기념하며 마음속 깊이 경축하는 날입니다. 오늘 응송에서 시인은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시 29:2)라고 촉구합니다. 거룩한 옷을 입은, 즉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마음껏 하나님께 예배하는 기쁨을 누리라는 권면의 시적(詩的)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구원의 신비를 드러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의 자녀 삼으신 우리를 바라보시며 사랑스러워하시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시는 하나님께 행복에 가득 찬 예배로 보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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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성령께서 새 창조하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행복을 체험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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