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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제4주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12-19 13:36
조회
1009
대림절 제4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미 5:2-5a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 에 있느니라 3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 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 까지 미치리라 5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응송 | 눅 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 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 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서신 | 히 10:5-10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 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 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 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 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 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복음 | 눅 1:39-45
39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40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41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42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 이도 복이 있도다 43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44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45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 이 있도다 46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 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49 능하신 이가 큰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 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눅 1:45을 묵상하십시오. 엘리사벳의 노래에 의하면 마리아는 어떤 여자입니까?
② 미 5:5을 묵상하십시오. 미가 선지자의 예언에 의하면 마리아의 믿 음과 순종으로 태어날 아이는 무엇이 될 것입니까?
③ 히 10:10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 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성탄절을 엿새 앞둔 오늘, 대림절 제4주의 주제는 두말할 나위 없이 '그리스도의 탄생'에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귀결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탄생이 있기 위하여 한 어린 처녀의 자기희생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입니다. 그녀는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기다림의 신앙'을 보여준 첫 번째 사람일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시려는 과정에서 자신의 태(胎)를 기꺼이 헌신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는 참된 신앙인의 모범이자 원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처음 마리아에 대한 교의적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처녀(사 7:14)'가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예수가 바로 이사야가 예언한 그 메시야이고, 그리스도시라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은 AD 431년, 에베소공의회에서 그리스도론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시라는 고백과, 마리아는 바로 그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님의 어머니'라는 논리적 귀결로서 '하나님의 어머니(데오토코스 Θεοτόκος)'라는 신학적 위치를 갖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마리아의 신앙을 기념하려 했던 애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사실까지도 교의에 포함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이므로 그녀에게는 원죄(原罪)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리아를 기억하는 것에 있어서 두 가지 극단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는, 마리아론이 터무니없이 과장되어 마리아를 구주로 숭배하게 만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마리아 신앙을 지나치게 경계한 나머지 그녀가 보인 아름다운 신앙의 모범마저 내팽개치는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 어느 극단에도 빠지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면, 우리는 그녀를 통해 진정한 신앙인의 아름다운 자태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우선 우리는 오늘 복음서의 말씀을 통해 누가의 시선으로 마리아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누가가 이 어린 처녀를 설명하는 표현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눅 1:45), 이것이 누가가 엘리사벳의 입을 통해 소개하는 마리아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리고 실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고 기다린' 마리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가 그녀의 '수태(受胎)'를 고지함으로서 시작됩니다.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0, 31)당황한 마리아가 천사에게 묻습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 1:34) 그때 천사의 대답이 이러했습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5-37) 그리고 이어지는 마리아의 대답이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 교회는 전통적으로 '탄생 예고 찬미가'에서 마리아의 대답을 이렇게 노래로 불렀습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제 몸 없으신 그분을 제 몸에 모시리니, 그분은 제게서 몸을 빌리시고 그 뒤섞임을 통하여 인류를 태초의 영광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이렇게 마리아는 천사의 수태고지를 찬미하고 믿음으로 자기 몸에 그리스도를 잉태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처녀에게 오셨으며,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자기 태에 모시어 그분께서 태어나실 때까지 지켰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리아의 이런 헌신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때 이미 마리아는 남자와 정혼(定婚)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천사가 잉태의 소식을 전했을 때, 어찌 그 소식이 그녀에게 위기가 아닐 수 있겠습니까? 남편에게 버림받는 것도 당연히 위기이지만, 심하면 율법과 관습에 의하여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가 천사의 수태고지를 받아들인 장면에서 우리는 창세기의 한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결혼했던 하와는 사악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말씀을 어겼습니다. 하지만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 잉태의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천사가 전해준 기쁜 소식을 믿고 순종해 말씀을 지켰습니다. 앞사람은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아 타락했지만, 뒷사람은 말씀을 알아듣고 하나님께 순종해 구원을 이룹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의 고백과 순종은 우리의 신앙에 표상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대림절의 신앙을 통해서 우리가 깨닫는 진리는 남을 짓밟고 올라가서 출세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림절의 진리는 가장 낮은 곳으로, 실패와 절망과 고통이 있는 자리로, 내려오는 진리입니다. 그리하여 비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진리입니다. 대림절로부터 성탄으로 이어지는 진리는 말구유로부터 십자가에 이르는 섬김의 진리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진리를 살지는 않은 채, 세상의 정치인 탓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시작해야 할 하나님 나라를 세속 정치인들에게 기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고, 그 말씀에 자기의 미래를 순종시킨 마리아처럼 "주께서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 나라가 이루리라" 믿고, 우리의 희망을 그 나라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는 오늘의 우리여야만 합니다. 오늘 구약성경과 서신서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마리아의 순종이 가져온 아름다운 결과를 봅니다. 먼저 구약성경에서 미가 선지자는 앗시리아 군대가 하나님의 백성과 그들의 통치자를 억압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구원 계획을 예언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말씀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 결여된 신앙이지 않은가?
②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고 순종하고 있는가?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미 5:2-5a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 에 있느니라 3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 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 까지 미치리라 5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응송 | 눅 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 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 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서신 | 히 10:5-10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 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 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 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 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 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복음 | 눅 1:39-45
39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40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41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42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 이도 복이 있도다 43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44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45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 이 있도다 46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 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49 능하신 이가 큰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 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눅 1:45을 묵상하십시오. 엘리사벳의 노래에 의하면 마리아는 어떤 여자입니까?
② 미 5:5을 묵상하십시오. 미가 선지자의 예언에 의하면 마리아의 믿 음과 순종으로 태어날 아이는 무엇이 될 것입니까?
③ 히 10:10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 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
성탄절을 엿새 앞둔 오늘, 대림절 제4주의 주제는 두말할 나위 없이 '그리스도의 탄생'에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귀결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탄생이 있기 위하여 한 어린 처녀의 자기희생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입니다. 그녀는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기다림의 신앙'을 보여준 첫 번째 사람일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시려는 과정에서 자신의 태(胎)를 기꺼이 헌신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는 참된 신앙인의 모범이자 원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처음 마리아에 대한 교의적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처녀(사 7:14)'가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예수가 바로 이사야가 예언한 그 메시야이고, 그리스도시라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은 AD 431년, 에베소공의회에서 그리스도론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시라는 고백과, 마리아는 바로 그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님의 어머니'라는 논리적 귀결로서 '하나님의 어머니(데오토코스 Θεοτόκος)'라는 신학적 위치를 갖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마리아의 신앙을 기념하려 했던 애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사실까지도 교의에 포함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이므로 그녀에게는 원죄(原罪)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리아를 기억하는 것에 있어서 두 가지 극단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는, 마리아론이 터무니없이 과장되어 마리아를 구주로 숭배하게 만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마리아 신앙을 지나치게 경계한 나머지 그녀가 보인 아름다운 신앙의 모범마저 내팽개치는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 어느 극단에도 빠지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면, 우리는 그녀를 통해 진정한 신앙인의 아름다운 자태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우선 우리는 오늘 복음서의 말씀을 통해 누가의 시선으로 마리아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누가가 이 어린 처녀를 설명하는 표현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눅 1:45), 이것이 누가가 엘리사벳의 입을 통해 소개하는 마리아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리고 실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고 기다린' 마리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가 그녀의 '수태(受胎)'를 고지함으로서 시작됩니다.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0, 31)당황한 마리아가 천사에게 묻습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 1:34) 그때 천사의 대답이 이러했습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5-37) 그리고 이어지는 마리아의 대답이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 교회는 전통적으로 '탄생 예고 찬미가'에서 마리아의 대답을 이렇게 노래로 불렀습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제 몸 없으신 그분을 제 몸에 모시리니, 그분은 제게서 몸을 빌리시고 그 뒤섞임을 통하여 인류를 태초의 영광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이렇게 마리아는 천사의 수태고지를 찬미하고 믿음으로 자기 몸에 그리스도를 잉태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처녀에게 오셨으며,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자기 태에 모시어 그분께서 태어나실 때까지 지켰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리아의 이런 헌신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때 이미 마리아는 남자와 정혼(定婚)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천사가 잉태의 소식을 전했을 때, 어찌 그 소식이 그녀에게 위기가 아닐 수 있겠습니까? 남편에게 버림받는 것도 당연히 위기이지만, 심하면 율법과 관습에 의하여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가 천사의 수태고지를 받아들인 장면에서 우리는 창세기의 한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결혼했던 하와는 사악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말씀을 어겼습니다. 하지만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 잉태의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천사가 전해준 기쁜 소식을 믿고 순종해 말씀을 지켰습니다. 앞사람은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아 타락했지만, 뒷사람은 말씀을 알아듣고 하나님께 순종해 구원을 이룹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의 고백과 순종은 우리의 신앙에 표상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 눅 1:39, 40
천사가 떠난 후 마리아는 천사가 일러준 대로 엘리사벳에게 갑니다. 마리아가 살던 나사렛은 북쪽 갈릴리였고, 엘리사벳이 살던 헤브론은 유다 산지로서 남쪽에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북쪽 갈릴리에서 남쪽 헤브론 산까지 험하고 먼 길을 엘리사벳을 찾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엘리사벳의 집에 들어설 때, 기다렸다는 듯 신비한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엘리사벳의 태중의 아기였습니다.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 눅 1:41
우리는 태중의 아이가 뛰놀았다는 이 증언을 단순한 태동(胎動) 정도로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안목으로 볼 때, 어떤 분이 오시는 것을 지각해서 뛰노는 이 움직임은 확실히 새롭고 범상치 않습니다. 아직 눈으로 사물을 보기도 전에 영으로 주님을 알아보고 뛰노는 이 아이에 대해 훗날 토리노의 막시무스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몸이지만 어머니 뱃속에서 뛰노는 것으로서 이미 요한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놀라운 성찰입니다. 정말로 훗날 이 아이는 '빈들의 소리' 즉 '광야의 선지자'가 됩니다. 도시와 문명을 거부하고, 사람들을 향해 맘몬의 주술과 유혹으로부터 돌아설 것을 촉구하며, 자기도 이 세상에 거처할 집하나 갖지 않은 변방인, 지금 그 아이가 태중에서 저 인간들의 도시문명이 아닌, 가까이 도래한 천국을 지각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만난 기쁨에 태중에서 뛰노는 아들의 기쁨은 어머니의 온몸과 마음과 영혼 전체로 울려 퍼졌습니다.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눅 1:41b) 큰 소리로 마리아를 축복합니다.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 눅 1:42
엘리사벳의 이 축복은 하나님의 큰 선물을 알아차린 사람으로서 당연한 축복이었습니다. 곰곰이 이 장면을 묵상해 보면, 잉태한 여인 둘이 서서 대화하고 있는 이 장면 그대로가 하나의 신비입니다. 몸이 늙어 아기를 잉태할 수 없는 태(胎)가, 처녀여서 아기를 잉태할 수 없는 태를 향해 하나님의 큰 선물인 거룩한 잉태를 기뻐하며 찬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하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잃었던 거룩한 잉태가 마리아의 태중에 이루어진 것을 본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시선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누가는 그녀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라고 귀띔해줍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진실을 그녀는 영의 눈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바로 그 영(靈)의 시선으로 마리아를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갑니다.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 눅 1:43
성령께서 엘리사벳의 입을 통해 마리아가 '주의 어머니(데오토코스 Θεοτόκος)'임을 선포해주는 장면입니다. 엘리사벳의 이 선포는 훗날 교회가 그리스도론을 확정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신학적 근거를 제공해 주고,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성탄의 참 의미를 성찰하게 해줍니다. 무엇보다 엘리사벳의 이 선포는 마리아에게 가장 중요한 표적(表迹 sign)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표적으로 말미암아 저 유명한 '마리아의 찬가'가 드디어 시작됩니다.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 도다 | 눅 1:46b-50
마리아의 찬가는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로 시작되어,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으로 연결됩니다. 그녀의 두 주체 즉 '영혼'과 '마음'이 이중으로 찬양하는데, '영혼'은 주(主)를 찬양하고 '마음'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것은 주(主) 즉 성자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이 서로 다른 분이 아닌 한 분이심을 고백하며, 자신의 영혼(ψυχή)과 마음(πνεῡμά) 즉 자기 존재의 가장 심층적인 곳으로부터 찬미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찬가에서 우리가 우선 주목해 볼 것은, 노랫말에 구약성경의 개념과 문장이 흠뻑 배여 있다는 점입니다. 그 사실은 마리아가 깊은 신앙심으로 인해 구약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러한 마리아였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모친으로 삼아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게 하셨을 것입니다. 혹자는 이 찬가가 삼상 2:1-10에 있는 '한나의 기도'에서 우러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마리아의 노래와 한나의 기도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먼저 마리아의 노래와 한나의 기도에는 짓밟힌 자를 옹호하고 주린 자를 배불리 먹이시는 하나님이 계시되고 있습니다. 한나의 기도가, 교만한 자와 오만한 자를 달아보시는 하나님(삼상 2:5), 가난한 자를 귀족들과 함께 앉히시는 하나님(삼상 2:8),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삼상 2:10)을 찬미하고 있다면, 마리아의 노래는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권세 있는 자를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시는(눅 1:52), 그리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시는 하나님을 찬미하고 있습니다.(눅 1:53) 이렇게 마리아의 노래와 한나의 기도에는 당시 어두운 사회를 향한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공히 교만한 자와 오만한 자에게는 경고를, 그리고 주리는 자와 비천한 자에게는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찬가가 한나의 기도를 초월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메시아 사상입니다. 마리아의 찬가에 담긴 기쁨의 중심에는 '비천한 자신의 태로 강림하시는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비천한 여종으로 인정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열등감이 아닌 피조물로서의 인간 실존에 대한 신앙적인 통찰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통찰로 인해 그녀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큰일이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능하신 이가 큰일을 내게 행하셨으니"(눅 1:49) '여종의 비천함'을 운명처럼 지닌 자신에게서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가 탄생하신다는 것, 그녀의 진정한 기쁨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이 기쁨으로 보는 마리아는 어떤 여인입니까? '참된 복(福)'이 무엇인지를 아는 여인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보잘것없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참된 아름다움에 눈뜬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의 목표와 가치를 이미 깨달았던 것이고,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드리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사건인지를 깨닫고 있었습니다. 사실 마리아 같은 비천한 몸을 빌어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셨다는 것은 이미 그 사실만으로도 당시의 엄격한 신분 질서를 전복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 행위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치사회적 토대를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으로 구체적으로 변혁하는 것을 포함합니다.대림절의 신앙을 통해서 우리가 깨닫는 진리는 남을 짓밟고 올라가서 출세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림절의 진리는 가장 낮은 곳으로, 실패와 절망과 고통이 있는 자리로, 내려오는 진리입니다. 그리하여 비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진리입니다. 대림절로부터 성탄으로 이어지는 진리는 말구유로부터 십자가에 이르는 섬김의 진리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진리를 살지는 않은 채, 세상의 정치인 탓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시작해야 할 하나님 나라를 세속 정치인들에게 기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고, 그 말씀에 자기의 미래를 순종시킨 마리아처럼 "주께서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 나라가 이루리라" 믿고, 우리의 희망을 그 나라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는 오늘의 우리여야만 합니다. 오늘 구약성경과 서신서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마리아의 순종이 가져온 아름다운 결과를 봅니다. 먼저 구약성경에서 미가 선지자는 앗시리아 군대가 하나님의 백성과 그들의 통치자를 억압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구원 계획을 예언합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 미 5:2
유다의 한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마리아를 통해 탄생하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통치할 주권자이시고, 사랑으로 양들을 인도하실 목자이십니다. 그 분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시고, 억압이 아닌 사랑으로 당신의 양떼를 이끄실 분이십니다. 미가 선지자는 그 분을 이렇게 부릅니다.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 미 5:5
이렇게 마리아의 순종은 우리에게 '평강의 주님'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서신서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이렇게 고백합니다.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 히 10:9, 10
첫째 것 즉 율법을 폐하시고, 둘째 것 즉 복음을 세우시려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는데, 하나님의 그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다는 고백입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고(눅 1:45), 자신을 희생시켜 생명을 잉태한 여인 마리아처럼, 우리도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으며 우리를 희생해 마음과 몸을 내어드리는 헌신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열망으로 가득한 2021년 대림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말씀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 결여된 신앙이지 않은가?
②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고 순종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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