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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제3주 회개에 합당한 열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12-11 16:32
조회
1050
대림절 제2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습 3:14-20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18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 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 을 얻게 하리라 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 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응송 | 사 12:2-6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서신 | 빌 4:4-7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 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복음 | 눅 3:7-17
7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 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 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 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 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0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14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 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 로 알라 하니라 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 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 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 묵상 | meditatio
① 습 3:16을 묵상하십시오. 이스라엘이 두려워하지 말고 손을 늘어뜨 리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빌 4:4, 5을 묵상하십시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③ 눅 3:10-14을 묵상하십시오. 회개에 합당한 열매로서 세례 요한이 열거하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에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구약성경에서 스바냐 선지자는 그 기쁨이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습 3:15), 그리고 그 용서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는 당신 자녀들로 인해 하나님의 기쁨이 배가(倍加)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습 3:17).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그 기쁨으로 말미암아 항상 기뻐할 것(빌 4:4)과 기쁨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맺어야 할 영적 열매(빌 4:5, 6)로서의 관용(寬容), 그리고 그 관용으로 말미암는 평강(빌 4:7)에 대해 말씀합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서에서 세례 요한은 그 기쁨을 얻기 위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것(눅 3:8)과 회개에 합당한 열매의 구체적인 예(눅 3:11-14)로서 각계각층이 실천해야 할 삶에 대해 말씀합니다.
먼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스바냐 선지자는 왕족 출신으로서 예루살렘의 정치적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 이전 남유다는 이미 므낫세 시절부터 신앙적으로 사회적으로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므낫세는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 왕이 15년간 생명을 연장 받았던 날로부터 3년째 되던 해 태어났습니다. 성전을 정화하고, 유월절을 회복시켰으며, 온갖 우상과 산당들을 제거하고, 백성들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고 계명을 지키도록 가르친(왕하 18:1-6) 선왕(先王) 히스기야와 달리 그는 남북 왕을 통틀어 가장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성전 뜰 안에 우상숭배 제단을 만들었고, 태양과 달과 별을 섬겼습니다. 유다 백성들도 므낫세 왕을 따라 바알신과 아세라 여신 같은 우상들을 섬기는 종교 혼합주의가 만연한 상황이었습니다(왕하 21:1-18). 신앙의 타락은 곧바로 사회적 정의의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관료들은 사자들처럼 으르렁거렸고, 재판장들은 저녁 무렵의 이리떼처럼 백성을 늑탈했습니다(습 3:3). 하나님은 그들을 벌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노와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여러 나라를 소집하며 왕국들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습 3:8)라고, 하나님은 스바냐를 통해 경고하셨습니다. 그런데 불의한 귀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항상 회개한 사람들과 힘없는 사람들의 구원에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경고를 통해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며(습 3:9),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 것(습 3:12)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시대에나 세상 어둠에 물들지 않은 이들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들은 비록 소수에 지나지 않아 어리석은 자들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그 날이 임하면 현실은 역전됩니다. 거만을 떨며 사나움과 간사함을 일삼던 자들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것이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다가 고난을 받은 사람들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바로 그 '남은 자들'을 향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삶의 돌이킴이 없는 막연한 회개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② 삶의 자세로 돌이키는 참되고 진정한 회개를 이루었는가?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습 3:14-20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18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 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 을 얻게 하리라 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 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응송 | 사 12:2-6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서신 | 빌 4:4-7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 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복음 | 눅 3:7-17
7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 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 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 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 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0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14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 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 로 알라 하니라 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 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 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 묵상 | meditatio
① 습 3:16을 묵상하십시오. 이스라엘이 두려워하지 말고 손을 늘어뜨 리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빌 4:4, 5을 묵상하십시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③ 눅 3:10-14을 묵상하십시오. 회개에 합당한 열매로서 세례 요한이 열거하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에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회개에 합당한 열매
지난 주 우리가 함께 나눈 말씀에 따르면, 대림절을 지나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미 내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계속 내 안에서 당신의 일을 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분을 향해 우리를 활짝 개방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라면, 그 때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 영광을 함께 볼 것"(사 40:5)이며, 세례 요한이 선포한 말씀에 따르면, 그 때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볼 것"(눅 3:6)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 그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오늘 성서일과는 바로 그 순간, 우리 안에 이루어질 기쁨에 대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구약성경에서 스바냐 선지자는 그 기쁨이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습 3:15), 그리고 그 용서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는 당신 자녀들로 인해 하나님의 기쁨이 배가(倍加)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습 3:17).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그 기쁨으로 말미암아 항상 기뻐할 것(빌 4:4)과 기쁨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맺어야 할 영적 열매(빌 4:5, 6)로서의 관용(寬容), 그리고 그 관용으로 말미암는 평강(빌 4:7)에 대해 말씀합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서에서 세례 요한은 그 기쁨을 얻기 위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것(눅 3:8)과 회개에 합당한 열매의 구체적인 예(눅 3:11-14)로서 각계각층이 실천해야 할 삶에 대해 말씀합니다.
먼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스바냐 선지자는 왕족 출신으로서 예루살렘의 정치적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 이전 남유다는 이미 므낫세 시절부터 신앙적으로 사회적으로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므낫세는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 왕이 15년간 생명을 연장 받았던 날로부터 3년째 되던 해 태어났습니다. 성전을 정화하고, 유월절을 회복시켰으며, 온갖 우상과 산당들을 제거하고, 백성들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고 계명을 지키도록 가르친(왕하 18:1-6) 선왕(先王) 히스기야와 달리 그는 남북 왕을 통틀어 가장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성전 뜰 안에 우상숭배 제단을 만들었고, 태양과 달과 별을 섬겼습니다. 유다 백성들도 므낫세 왕을 따라 바알신과 아세라 여신 같은 우상들을 섬기는 종교 혼합주의가 만연한 상황이었습니다(왕하 21:1-18). 신앙의 타락은 곧바로 사회적 정의의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관료들은 사자들처럼 으르렁거렸고, 재판장들은 저녁 무렵의 이리떼처럼 백성을 늑탈했습니다(습 3:3). 하나님은 그들을 벌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노와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여러 나라를 소집하며 왕국들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습 3:8)라고, 하나님은 스바냐를 통해 경고하셨습니다. 그런데 불의한 귀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항상 회개한 사람들과 힘없는 사람들의 구원에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경고를 통해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며(습 3:9),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 것(습 3:12)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시대에나 세상 어둠에 물들지 않은 이들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들은 비록 소수에 지나지 않아 어리석은 자들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그 날이 임하면 현실은 역전됩니다. 거만을 떨며 사나움과 간사함을 일삼던 자들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것이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다가 고난을 받은 사람들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바로 그 '남은 자들'을 향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 습 3:14
여기 보면 '시온의 딸'과 '이스라엘' 그리고 '예루살렘의 딸'이 함께 언급되는데, 이들은 모두 '남은 자'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향한 권면이 무엇입니까? "노래할지어다", "기쁘게 부를지어다",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입니다.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루스는 이 말씀을 스바냐서 주해에서 이렇게 주석했습니다. "오 예루살렘아, 이제 완전한 기쁨 속에, 완전한 행복과 만족감속에서 살아라." 어떻게 그 어두운 사회 속에서 완전한 행복과 만족감을 가지고 노래하고 기뻐할 수 있을까요? 스바냐 선지자는 장차 도래할 기쁨의 날을 보여줍니다.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 습 3:1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형벌을 제거하셨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죄악을 용서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에서 '네 원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 사용하신 도구들'인데, 그 도구들을 쫓아내셨다는 것은, 남은 자들에게는 심판이 필요치 않기 때문에 깨끗이 '제거하셨다(파나 הנפ)'는 말씀입니다. 이 날을 이미 이루어진 현실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쁨과 즐거움과 노래가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 보십시오.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 습 3:16-17
여기 14-15절 그리고 16-17절에 나타나는 평행적 표현이 매우 감동적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철저하게 이스라엘의 기쁨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기쁨과 즐거움과 노래가 있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부모의 기쁨이 자녀의 행복과 연관되어 있는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사실 이 기쁨은 우선 바벨론 포로에서의 해방과 귀환을 전제로 예언 된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실 일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분은 오셔서 억눌린 이들을 치유해 주셨고, 거듭남을 통해 인간 본성을 새롭게 하셨으며, 당신의 희생과 부활과 승천의 전 과정을 통해 죽음과 땅으로 귀결된 우리 운명을 변화시켜, 생명과 하늘이라는 새로운 이상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대림절에 이 땅에 강림하시는 주님을 그토록 고대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정진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지금 대낮인 사람 즉 스스로 밝다고 착각하며 자기 의에 도취해 살아가는 사람도 아니고, 하늘도 어둡고 세상도 어둡다며 현실을 비관하며 사는 사람도 아니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별을 보는 사람, 그 별에서 기쁨의 이유를 찾는 사람, 그가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 빌 4:4
바울에게 기쁨은 순간적인 감정의 변화가 아닙니다. 언제나 유지되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주 안에서'라는 조건에 기초하고 있기에, 현실과 환경이 변한다 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기쁨입니다. 앞에 있는 1절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보면 이 말씀이 더 깊이 있게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빌 4:1) "주 안에 서라" 이 말씀이 원문에는 '스테케테(στήκετε)'라고 되어 있습니다. "굳게 서라", "진실하게 서라" 그런 뜻입니다. 주 안에 '굳게 서는 것', '진실하게 서는 것' 그것만이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열쇠라는 겁니다. 그러면 주 안에 굳게 서고 진실하게 서는 것, 그것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대신 다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 빌 4:5
여기서 관용은 헬라어로 '토 에피에이케스(τὸ ὲπιεικὲς)'입니다. 손해를 보거나 역경을 당해도 쉽게 동요하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는 '영적 인내'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향해 갖는 너그러움입니다. 이 너그러움은 구약에서는 현자들의 성품으로 거론되기도 하고, 디모데전서에서는 감독의 품성으로 소개됩니다. 초기 기독교는 이 너그러움을 교회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보았습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는 말씀은 너그러움을 교회의 정체성으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 안에서 기뻐하는' 사람들의 결정적인 특징이라는 말씀입니다. 관용은 말처럼 간단한 게 아닙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관용보다는 비판에 익숙하고, 너그럽기보다는 이빨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합니다. 교양을 쌓으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까요? 아닙니다. 교양이 있으면 교양 있게 싸우고, 교양이 없으면 교양 없이 싸웁니다. 사람은 서로를 경쟁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특히 자본주의가 극에 달하고 있는 현대사회는 그런 현상이 더 심합니다. 사실 세상을 향해서 싸우지 말고 관용을 베풀라고 말할 자격이 교회에는 없습니다. 한국교회도 세상 못지않게 싸웁니다. 왜 그럴까요? 두 가지 중의 하나가 그 대답입니다. 하나는 우리가 기독교 신앙 자체를 모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세상 삶에 길들여졌다는 겁니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 들어가면서 동시에 세상의 삶에 길들여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긴장관계, 또는 변증법적인 관계입니다. 신앙의 중심으로 들어오면 당연히 세상 삶에 길들여지지 않을 것이고, 세상 삶에 길들여지지 않아야만 비로소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 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의 말씀에 따르면 관용은 주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믿을 때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관용을 말하면서 바로 이어서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라고 덧붙인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살이와 '주께서 가까우시다'는 사도 바울의 말씀은 삶속에서 그대로 연결되고 있습니까?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이 말씀에서 '주(主)'는 헬라어 '퀴리오스(κύριος)'의 번역입니다. 4절에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할 때,그 '주(主)'도 헬라어로 '퀴리오스'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 이 퀴리오스는 하인이 주인을 부를 때, 그리고 로마시민이 황제를 지칭할 때 사용되는 호칭이었습니다. 여기에서의 퀴리오스는 생사여탈권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런데 초기 기독교는 그 단어를 예수님께 붙였습니다. 그러니까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그 말씀은 내 생사여탈권을 가진 분이 가까이 오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들으면서 그다지 부담이 되지 않는 이유는, 2천 년 전에 가까이 오셨다던 그 분이 아직도 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 때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라고 사도신경을 그렇게 입으로 고백하면서도, 내 생사여탈권을 가지셨다는 그 분에 대해 사실은 하나도 부담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는 사도 바울의 말씀은 오늘 복음서에서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라는 세례 요한의 메시지(눅 3:9)와 연결됩니다. 여기에서 세례 요한은 '이미'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 눅 3:9
좀 더 긴박감을 더해주는 표현입니다. 그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 라고 외쳤을 뿐 아니라,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 '이미' 심판이 시작되었다고 선포합니다. 그러면 당시의 사람들은 세례 요한의 이 경고를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였을까요? 그들은 긴박성 안에서 이 경고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애절한 심정이 되어 요한에게 물었습니다.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 눅 3:10
그들의 이 긴박하고 애절한 물음은 대림절을 지나며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물음입니다. 이 물음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한 의지가 강하게 배어나는 물음들이었습니다. 누가는 요한에게 이 물음을 던진 사람들을 대표해서 세 집단을 이야기합니다. '무리'와 '세리들'과 '군인들'입니다. 마치 의사가 환자의 증상에 따라 적절한 처방을 내리듯이 세례 요한 역시 각 집단마다 적절한 충고를 내려줍니다. 먼저 요한은 무리에게 말합니다.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 눅 3:11
요한이 무리에게 처방해 준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자기에게 있는 것을 없는 이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다른 뜻으로 설명하면, 옛 사람의 옷을 벗고, 새 사람의 옷을 입으라(엡 4:22-24)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요한은 또 세리에게 말합니다.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 눅 3:13
요한의 이 말은 법이 정해준 것보다 더 거두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정해진 것보다 더 거두는 자들은 요한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을 통해 말씀하신 성령을 거역하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이 군인들에게 한 말도 명료합니다.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 눅 3:14
이렇게 요한은 사람이 하는 일에 따라 적절한 답을 제시해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시대보다 훨씬 더 직업이 많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온 이들은 당시의 직업을 대표하는 이들일 뿐 아니라, 오늘 요한의 말씀을 듣는 우리의 직업까지도 대표하는 이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로서 우리가 처해진 각자의 자리에서 요한의 말씀대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언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지금부터입니다. '지금' 의복을 나누어야 하고, '지금' 음식을 나누어야 하고, '지금' 불의한 일을 중단해야 합니다. 주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습니다.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러나 참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용서와 구원을 얻고, 하나님 안에 있는 기쁨으로 말미암아 관용과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기쁨이 항상 임할 것입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삶의 돌이킴이 없는 막연한 회개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② 삶의 자세로 돌이키는 참되고 진정한 회개를 이루었는가?
첨부파일 : 대림절-제3주-회개에-합당한-열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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