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주현 후 제7주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출 24:12-18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 판을 네게 주리라 13 모세가 그의 부하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모세가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14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 하리니 무릇 일이 있는 자는 그 들에게로 나아갈지니라 하고 15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 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같이 보였고 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 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응송 | 시 99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
서신 | 벧후 1:16-21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 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 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 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 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복음 | 마 17:1-8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 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 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 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 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 하지 말라 하시니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 더라
■ 묵상 | meditatio
① 출 24:12, 18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곳과 하나 님의 영광이 맹렬한 불 같이 보인 곳은 어디입니까?
② 마 17:4, 5을 묵상하십시오. 베드로가 현상에만 취해 있을 때, 하나 님께서 구름 속에서 그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③ 벧후 1:16-18을 묵상하십시오. 베드로가 '친히 본 것'(16절)은 무엇 이고, '친히 들은 것'(18절)은 무엇이었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코로나19가 봄과 함께 주춤하는 듯싶더니 신천지로 인해 다시 확대되는 양상입니다.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던 신천지가 이제는 우리나라 전체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대구 누가교회의 정금교 목사님은, 섬처럼 사람들과 거리 두고 다니기 신공을 부리지만, 그럴수록 우린 얼마나 관계적 인간이었던가를 더욱 절감한다며 심경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주현절기 동안 교회는 빛을 따라 왔는데, 세상은 때 아닌 바이러스에의 불안에 젖어들고,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 앞에서 이제는 교회마저 교우들의 안전을 위해 여러 조치를 고민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우리 교우들뿐 아니라, 가족들 그리고 이웃형제들이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잘 돌보고 지켜내기를 기도합니다. 그런 가운데 오늘 교회력은 주현절기를 마감 짓는 예수님의 산상 변화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어느덧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ash)의 수요일도 사흘 앞두고 다가왔는데, 산상변화주일과 재의 수요일은 주현절을 마감 짓고 사순절을 맞이하는 여정에 매우 인상 깊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오늘 우리가 맞이한 산상 변화주일이 저 옛날 모세와 예수님의 얼굴에 비친 하나님의 빛을 보여준다면, 사흘 앞으로 다가온 성회수요일은 흙으로부터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로서 빛 안에서 영원을 향해 가는 여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사순절은 예수님께서 부활 이전에 당하신 고난의 40일을 바라보는 절기입니다. 그러고 보면 빛의 절기인 주현절에서 출발해, 사순절을 지나 수난주간 그리고 부활절로 이어지는 교회력의 징검다리 속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이 보석처럼 박혀있음을 보게 됩니다.오늘 성서일과는 이 즈음을 지나는 우리에게 산(山)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성경에서 사람들이 산에 오르는 까닭은 자명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오른 것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달아나던 엘리야가 호렙산에 오른 것도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산은 일상적 삶의 공간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 지친 이들이 바라보거나 찾아가는 장소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시 121:1) 라고 묻던 히브리 시인의 노래도 같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또한 산은 비일상적인 장소라는 점에서 광야와도 같습니다. 먼저 구약성경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서서, 십계명이 새겨진 돌 판을 받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이 장면은 산이라는 특정한 장소를 매개로 '하나님과 인간'이 만났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하늘과 땅'이 만났다는 측면에서 깊은 신앙적 의미를 부여해주고 있습니다.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 출 24:15, 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에서 '머무르고'를 뜻하는 히브리어 '샤칸(ןכשׁ)'은 '거주하다', '정착하다'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가 헬라어로 표현될 때는 '스케노오(σκηνόω)' 즉 '거주하다', '텐트를 치다'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성육신하신 하나님께서 인간 가운데 거하심을 나타낼 때 쓰이는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떠나지 않고 그들과 '함께 계심'을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백성들의 시선 가운데 머물러 계시며, 그들과 언약도 체결하신 하나님께서 어느 날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십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모세만을 다시 부르신 이유는 시내산 언약을 구체화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산 아래 남겨둔 채 여호수아만 데리고 시내산을 오르더니, 산의 어느 지점에서는 여호수아마저 남겨둔 채, 하나님의 영광이 드리운 구름 속으로 들어갑니다. 백성에게서는 점점 멀어지지만 그러나 하나님께로 점점 가까이 가는, 모세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 출 24:17, 18
여기 하나님의 현현(顯現)이 '여호와의 영광'이라는 표현으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광은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과 '구름'으로 형상화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목격한 시내산 정상에서 보이는 맹렬한 불은 산꼭대기를 거룩한 장소로 인식하도록 만들고, 구름이 그 산꼭대기를 가리는 것 역시 하나님 현현의 신비를 극대화해줍니다. 특별히 구약성경의 말씀 가운데 15절에서 18절은 바벨론 포로시기에 제사장문서 즉 'P문서 계열'의 저자들이 삽입한 구절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현현 장면을 창세기의 천지창조 장면과 오버랩 시키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세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사십 일 사십 야를 홀로 지냈다는 사실입니다. 40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시험과 시련의 기간'을 상징합니다. 모세는 백성들과 완전히 격리된 40일 동안 맹렬한 불과 구름이 자신을 감싼 상태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돌 판에 기록된 계명과 율법의 의미를 상세하게 배웠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도 구약성서와 매우 비슷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 마 17:1, 2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전 생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 오르셔서,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고, 옷이 빛처럼 희어진 장면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십계명을 받고(출 24:8-18) 산에서 내려올 때, 그 얼굴에 광채가 났던 사실을 연상하게 합니다.(출 34:29) 우리는 오늘 복음서의 내용을 잘 압니다. 수난의 고통스러운 골짜기로 들어가시기 전, 주님께서는 높은 산 위에 오르셔서 영광스러운 얼굴로 변화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 산이 머리에 흰 눈을 인 채 서있는 2,814미터의 헤르몬 산이라고도 합니다만, 정말 예수님께서 그 산에 오르셨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높은 산이란 어떤 '장소'로서의 산일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비일상적인 '상태' 즉 하나님의 현존 앞에 있는 상태를 말할 때 자주 사용됩니다. 제자들은 일상을 떠난 그 자리에서 자기들의 스승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됩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산 위에서 깊은 침묵 속에 계셨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제자들은 비로소 예수님의 실체를 보게 됩니다.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그분은 빛이셨고, 하늘이셨습니다. 안에서부터 밖으로 새어 나오는 빛, 예수의 존재로부터 방사되는 빛, 그 빛은 태초에 어둠을 가르던 바로 그 빛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노자 도덕경 56장에 나오는 '지자불언(知者不言)'이 예수님께 참 어울리는 교훈입니다. 참다운 지혜자는 누구입니까? '지자불언(知者不言)' 즉 '아는 자는 침묵한다'는 말뜻에 담겨 있듯이, 마음의 날카로움을 꺾고, 그 빛을 감추고, 속세의 먼지와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일부러 빛을 감추고 속세와 하나가 되는 것을 일러 '시위현동(是謂玄同)', '진리와 신묘하게 하나 되었다'라고 말하는데, 빌립보서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고백에서 우리는 자신의 빛을 감추고 속세의 먼지와 하나 되신 예수님의 시위현동(是謂玄同)을 봅니다.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빌 2:6-8
제자들은 그 산에서 티끌 속에 감추어졌던 예수님의 빛을 비로소 보았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고양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더 놀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빛이신 그 분이 수난이라는 운명을 향해 나아가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산에서의 경험은 제자들의 예수 체험의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에게 있어서의 예수님은 놀라운 이적을 베푸는 스승이었습니다. 어쩌면 로마의 압제와 헤롯의 폭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야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와서 자기 빛을 감추고 속세의 먼지와 함께 하신 하나님 생명의 빛, 참 빛(요1:9)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 마 17:3, 4
제자들이 보니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더불어 대화를 나눕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그들은 산과 불 그리고 빛이라는 상징을 통해서 오늘 복음서의 변화 사건과 연결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이 장면에서 그다지 중요한 인물들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마태는 여기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말하는 것을 제자들이 보았다고 전할 뿐이지, 모세와 엘리야의 모습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습니다. 즉 모세와 엘리야는 이 이야기에서 그저 소품 내지는 엑스트라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이 복음서의 말씀을 통해서 마태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은 사실은 따로 있습니다.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 마 17:5
변화하신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말하는 것을 본 베드로는, 당장 여기에 초막 셋을 짓고 다 함께 살자며 혼자 흥분해서 제안을 합니다. 지금의 이 황홀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는 뜻일 텐데,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습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성경을 꼼꼼히 읽는 분들은 이 장면이 예수님의 세례 장면과 비슷하다는 것을 눈치 채셨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을 때, 오늘과 비슷한 현상이 있었습니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그 때는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님 위에 임하셨는데, 오늘은 성령이 아닌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하늘로부터 들려온 '말씀'은 그 때나 오늘이나 놀랍게도 똑같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마 17:5)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변화하신 후 들려온 하늘의 소리에는 한 마디가 더 추가되었습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이런 일련의 상황들을 겪으면서 복음서 기자들이 내리게 되는 결론은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 그 진실에 대한 인식과 경험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즉 그분이 메시아라는 의미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그 사실에 몰입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서신서의 저자인 베드로에게서도 같은 심정을 봅니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 벧후 1:16-18
자기가 목격한 어떤 진실에 대해 사실 그대로 전하고자 하는 베드로의 절절한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자기가 증언한 것은 교묘하게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로서의 증언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 날 자기와 다른 제자들이 보았던 그 잊지 못할 장면에 대해 또렷하게 증언해 갑니다. 저는 이 장면을 묵상할 때마다, 때로는 추억을 더듬듯, 때로는 그 황홀함 속에서,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며 증언하는 베드로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베드로는 왜 그 날, 자기와 다른 제자들이 보았던 장면을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증언을 하려는 것일까요? 모세가 산에 올라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고, 예수님이 산에 올라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고, 자신들도 예수님을 따라 산에 올라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섰을 때,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과 음성을 들을 수 있었듯이, 자신의 증언을 듣는 모든 사람도 신앙과 수련의 산에 올라 주님의 영광을 보아야만 비로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말을 더 들어보십시오.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 벧후 1:19
베드로의 이 표현이 너무너무 좋습니다.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그 때까지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어둠을 비추는 등불과도 같은 '말씀'에 온 마음을 집중해 살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 순례의 여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산을 오르며 우리 삶을 재정립하는 절기입니다. 40일간 우리 앞에 주어진 신앙과 수련의 산에 올라 등불 같은 말씀에서 주님의 빛을 보고, 그 빛을 통해 세상을 보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제가 속한 카리스마타 수도회의 정원기 목사님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소동을 접하며, 육체적 세상과 영적 세계의 이치가 너무나 동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정체불명의 독한 바이러스가 육체적 생명을 위협하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감염을 막으려는 국가적 노력이 가상한데, 그 경고와 대처 내용을 보면, 첫째, 청결 즉 손과 몸을 깨끗이 씻으라는 것, 둘째,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을 가지 말라는 것, 셋째, 바깥출입 시에는 마스크를 꼭 착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원칙들이, 건강한 영적생활을 위한 수도자들의 가르침과 너무 흡사하다는 겁니다."첫째, 네 마음을 회개의 눈물로 자주 씻어 영혼을 깨끗이 하라. 둘째, 무리에 연합하여 들떠 자신을 잃는 일이 없도록, 깊은 마음의 골방에 들어가 묵상하기를 힘쓰라. 셋째, 입을 닫고 무겁게 하여 많은 말을 하지 말고 침묵하라." 그리고 수도자의 가르침을 이야기 하던 끝에 정원기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저 기괴한 바이러스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정복될 수 있을까요? 아마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물론 이 코로나는 뒤늦게라도 어떤 백신이 개발될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 다음에는 또 어떤, 더 독한 신종이 출현할 것이 분명한데, 영적 세계도 다르지 않을 거예요. 영혼(마음)의 악령(죄악)도 세상 끝 날까지 사라지지 않겠지요. 그래서 우리 한 생애에 우리의 영적 사부들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필연적 과제일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모세가 산을 오르듯, 예수님과 제자들이 산을 오르듯, 우리도 영적 수련의 산에 부지런히 오르며, 우리의 내면을 그리스도의 빛으로 채워야 할 듯합니다. '날이 새어 샛별이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기도와 말씀묵상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을 향해서도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머리 위로 임하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 여러분을 위해 들려오기를 소망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산 아래에서 '보이는 현상'에만 반응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② 산 위에 올라 예수님께 마음과 시선을 고정해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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