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한석문 담임목사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호 10:12
12 너희가자기를위하여공의를심고인애를거두라너희묵은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 묵상 나눔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종교개혁의 원음(原音)을 찾아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종교개혁의 원음(原音)을 찾아
종교개혁 500주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 가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붙인 것을 기점으로 종교개 혁이 촉발되었습니다. 역사적 사건마다 시대적 배경이 있고 배워야 할 교 훈이있습니다.메아리가큰사건일수록배경의폭은넓고교훈은더욱풍 성합니다. 종교개혁이 바로 그렇습니다. 종교개혁 당시 기독교는 동로마 중심의 ‘정교회(Orthodox Church)’와, 서로마 중심의 ‘로마 가톨릭교회 (Roman Catholic Church)’로 크게 이분화 되어 있었습니다. 1054년, 기 독교가 동서로 분열된 이후로 동로마 중심의 ‘정교회’는 로마 제국의 새로 운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을 본거지로 하고 있었고, 서로마 중심의 ‘로마 가톨릭교회’는 당시 서구의 라틴 문명권을 주도하며, 기독교 우위의 제국 지배체제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 중 개혁자들이 개혁하고자 한 종교는 서로마 중심의 로마 가톨릭교회였습니다.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는 로마 제 국의 국교로 군림하면서 과거의 탄압받던 종교집단에서 지배자의 종교로 코페르니쿠스적 체제 변모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황 우위의 정교 일치 지배구조를 강화시키며 당시 유럽을 로마 가톨릭의 절대적인 영향 하에 두었습니다. 교황에 대한 복종은 필수적인 요소였고, 성직자들은 종 교생활 뿐 아니라 결혼과 장례, 교육과 의료 등 생활 전반을 관리하며, 교 황청은비교적쉽게게르만족위에군림할수있었습니다.이렇게절대권 력을 가진 교회는 세속화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타락의 늪에 빠져들고 맙 니다. 글을 아는 성도들이 없다 보니 성직자들은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지 않았고, 말씀을 왜곡한 결과는 면죄부 판매로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성 베 드로 성당 건립 자금 충당을 이유로 면죄부를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면죄부 즉 ‘인둘젠스(Indulgence)’라는 단어의 근원을 먼저 알아보면 이 단어는 ‘관대, 은사, 후하게 베풀어 줌’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인둘 젠티아(Indulgentia)’에서 비롯된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면죄부(免罪符)는 ‘ 관대, 용서, 호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 개신교 신자들이 유의해야 할 점은, 이 면죄부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에 편견이 없어 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16세기 당시 교황 레오 10세는 성 베드로 대성전 건립을 위해 전 세계적인 모금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는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일반적인 조건에다가 성 베드로 대성전 건립을 위한 헌금조항을 하나 더 첨부했었는데, 그것이 소위 ‘면죄부 사건’의 발단이 된 것입니다. 교황 레오 10세의 ‘면죄부령’을 전해 받은 독일교회의 알베르트 대주교는 이 면죄부령을 통해 더 많은 실효를 거두기 위해 장문의 교서를 발표하는 데, 교서에 열거된 면죄를 받는 조건은 세 가지입니다.
“1 과거에 범한 죄를 참회한 후 고해 성사를 받아야 한다. 2 지정된 일곱성당을순례하고성당순례때마다그리스도의오상즉십자가에서 못 박힌 양손과 양발 그리고 창으로 찔린 옆구리의 상처를 묵상하는 뜻으 로주의기도와성모송을다섯차례씩외우든지또는시편50편을외워야 한다. 3 성 베드로 대성전 건축비로 응분의 헌금을 한다.” 등입니다.
그런데 두고두고 문제가 된 마지막 3항에 대해서 이런 부연 설명이 있 다는사실을알아야합니다.”천국은부자나빈자가다같이갈수있도록 공개되었으므로돈없는빈자들은헌금대신기도나단식으로면죄를받 을 수 있다.” 아무튼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당시의 ‘면죄부령’은 전 체 맥락에서 ‘선행이나 공로로 면죄를 받을 수 있다’는 비성경적인 요소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었고, 타락한 중세교회를 향해 던진 ‘오직 믿음’이라는 루터의 기치가 얼마나 당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을 지는 능 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루터가 불길을 당긴 ’95개조 테제’나 종교개혁의 신학적 입장을 대변하는 ‘sola’ 즉 ‘○○만’ 할 때의 ‘만’의 신학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즉 당시 루터가 선언했고, 올해 우리교회가 새해 표어 와 함께 세 가지 실천 과제로 삼은 ‘성경만으로(sola scriptura), 믿음만으 로(sola fide), 은총만으로(sola gratia)’는 분명히 신앙 측면에서는 저항이 고, 교회의 측면에서는 개혁의 대안입니다. 한마디로 위 세 가지 선언은 ‘ 교회로 하여금 교회 되게 하자’는 ‘교회다움’ 회복의 시작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주목할 사실은, 그토록 교황의 절대 권력에 저항하고 세속화된 교회와 성직자들의 만행에 반대하며 생겨난 개신교의 개혁전통 을 계승한 한국교회가 16세기 종교개혁 당시의 가톨릭교회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사실입니다. 중세교회사를 전공한 백석대학교의 임원택 교수에 따르면, 한국교회 전반에 널리 퍼진 기복신앙, 양적 성장을 위해 ‘신자를 뺏는’ 교회, ‘축복권’의 남용과 성직매매의 재현 등에서 작금의 한국교회는 중세교회 당시의 가톨릭교회와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지금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우리 내면의 개혁, 즉 ‘믿음의 개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 고, 선교 13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교회가 ‘묵은 땅’이 되어가고 있다는 지적을 우리는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묵은 땅이 무엇입니까? 오랜 세월 동안 땅에 자갈이 뒤덮여져 경작이 불가능하게 된 황폐한 땅을 가리 킵니다. 이 묵은 땅을 갈아엎어 좋은 땅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개혁 은 출발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올해 우리교회 표어는 ‘종교개혁의 원음 (原音)을 찾아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이고, 주제 성구는 호 10:12절 말 씀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입니다. 종교 개혁은 바로 천 년간 묵고 묵은 중세의 땅을 기경해서 좋은 땅으로 되돌 리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역시 묵은 땅을 기경해서 우리 내면을 좋은 땅으로 만드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500년 전 유럽교회의 개혁가들은 원전(原典)에 능한 학자들이었습니다. 당시 개혁가들은 헬라어 신약 원전과 히브리어 구약 원전으로 직접 되돌 아가서 성경이 본래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에 자신의 귀를 직접 갖다 대 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복음의 원음을 생생히 다시 들었습니다. 부산 문 화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동래아리랑’을 아실 것입니다.
현해탄에 배가 뜨자 정든 님은 간 곳 없고
칠산바다 부는 바람 마디마디 눈물일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1930년대 강제노역에 동원되어서 대한해협을 넘어 일본 땅으로 끌려간 선조들이 가슴에 응어리진 아픔과 사연을 담아 부르던 동래 아리랑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점점 잊혀 가다가, 1937년판 유성기 음반을 수년간 고증 작업한 끝에 가사와 곡조가 온전히 복원되어서 작년 10월 동래읍성축제 때불렸었습니다.그때사람들가슴가슴마다에과거선조들이겪은무자 비한 억압과 슬픔이 고스란히 재연되었습니다. 그렇듯이 개혁가들도 헬라 어신약원전과히브리어구약원전으로직접되돌아가서성경이본래무 엇을 말하고자 했는지에 자신의 귀를 직접 갖다 대었었고, 복음의 원음을 생생히 다시 듣고, 자기들의 마음을 기경하는 것에서부터 개혁을 시작했었 습니다. 진정한 개혁은 그렇게 우리 가슴 속에 복음의 원음(原音)을 복원 해서들을때,그리고개혁자들이외쳤던개혁의소리,그생생한원음을 복원해서들을때,비로소시작될수있는것입니다.오늘본문은북이스 라엘 여로보암 2세 때,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주어진 말씀입니다. 여기에 서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묵은 땅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여기 묵은 땅은 한때 갈아엎어졌던 땅입니다. 씨도 뿌려졌던 땅입니다. 결실이 있어서 추수도 이루어졌던 땅입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또 어 떤 이유에서인지 그 땅은 딱딱해졌고, 거칠어졌고, 돌들이 여기 저기 돌출 되어 황폐해지다가 거친 풀들이 우거진 묵은 땅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 어떤 곡식도 열매도 거두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런데도 불구하고 농부는 여전히 그 땅을 버려둔 채 있는 상태입니다. 그 묵은 땅은 바로 호세아 당시 북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상태를 잘 보여주 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때,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하 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부터 그들 심령이 황폐화되어 그 속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 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시 갈아엎어야 합니다. 갈아엎는다는 것은 회 개를 말하는 것입니다. 묵고 굳은 마음을 회개해서 말씀을 받아들이기에 좋은 땅으로 우리 자신을 개혁하는 노력입니다. 땅은 한 번 갈아엎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매 해,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갈아엎어줘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농부는 씨앗을 뿌릴 수 있고, 땅은 비로소 자기 안에 씨앗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 벌어지는 일에 대해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묵은 땅을 갚아 엎어 좋은 땅이 되면, 농부는 그 밭에 씨앗을 뿌립니 다. 그 다음 농부가 할 일은 없습니다. 농부는 이제 하늘만 바라봅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에 따르면 그 때,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신다고 합니다. 회개한 마음 가득 말씀의 씨앗을 머금고 하늘을 볼 때, 하나님은 성령의 단비를 부어 열매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JTBC 뉴스를 즐겨봅 니다. 거기 제가 좋아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뉴스가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앵커가 이렇게 말합니다. “앞에서 보도해드린 것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러면서 앞에서 이미 보도한 사실에 대해 한 걸음 더 심층 적인 분석을 곁들여줍니다. 그 때 사람들의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우리는 성경의 보도를 읽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성경으로 마음을 기경하는 사람 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그냥 글자로만 읽고 말면 우리 마음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말씀을 마음에 두고 묵상함으로서 그 원음을 향해 한 걸음 더 들어가 봐야 합니다. 묵상이 깊어질수록 성경의 말씀들은 원음 그 대로 우리 마음에 들려올 것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의 첫날이 밝았습니다. 500년 전 그들은 무엇을 하려 했을까요? 천 년간 묵어 황폐해버린 중세의 땅을 갈아엎어 ‘근원의 샘으로 돌아가는 것(ad fontes)’ 복음의 원음인 성경에 자신들의 귀를 갖다 대고, 그 생생한 소리로 묵고 황폐한 자신들의 마음을 갈아엎는 것, 그들의 노력 은 거기에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때 개혁가들이 가슴으로 들은 이 야기들을 지금 우리는 똑같이 가슴으로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어디 에 서 있는지,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를 낱낱이 알아야 합니다. 그런 다 음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를 진지하게 물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에서 사도 바울이 고백했듯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 그 원음에서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 벅찬 노동을 시작하는 여러분에게 어 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의 단비를 내려주셔서 우리 모두를 새롭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