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샘
영성이란 무엇인가?
영성에 관하여
작성자
한석문
작성일
2018-03-16 23:13
조회
3540
영성에 대한 기독교의 관심은 기독교 초기부터 있어왔지만, 한국 개신교는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보다 새로운 관심을 보이게 된다. 이때부터 영성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20세기 후반의 문명이 크게 전환하고 있다는 일종의 패러다임의 전환의식 속에서 ‘이성의 우위성’을 극복하고 ‘정신적 영적 성찰’을 이루고자 하는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성에 관한 선명한 이해는 생각처럼 용이한 과제가 아니다. 그 이유는 영성의 개념이 가지는 애매성과 모호성 때문이다. 애매성이라는 것은 영성이란 용어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고, 모호성이라는 것은 ‘영성’과 ‘비 영성’을 구별하는 경계선이 불분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위 '영성이란 개념’에 대한 정의를 시도하는 신학자들에 따라 그 의미가 제각각으로 해석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에도 그 정확한 의미를 뚜렷하게 구별해 낼 수 있는 일정한 신학적 준거나 지표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영성이라는 영어 단어는 spirituality인데, ‘영적(靈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4세기 때에 제롬(Jerome)이 처음으로 ‘Spiritualiy’ 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 단어를 포괄적 의미에서 이해하자면, 인간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초월적 실재를 향해 도달하도록 돕는 태도 혹은 신앙실천을 서술하는 용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포괄적이란 표현이 그렇듯이 영성이란 상당히 폭넓은 영적 지향의 태도를 의미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영성이란 단어가 가지고 있는 애매성과 모호성으로 인해 ‘기독교인의 삶’이란 용어를 선호하기도 했다.
카즌스는 영성이란 말을 내면적 차원과 관련하여 이해한다. 그에게 있어 영성은 “전통적으로 ‘영’이라고 불러지고 있는 인간의 내적 차원에 관심을 둔 말로, 인간의 가장 심원한 중심을 의미하며, 바로 이곳에서 인간은 초월적인 차원을 향하여 열려 있으며, 궁극적인 실재를 체험하게 된다.”(유해룡 '영성훈련의 의미와 방법' 장로회신학대학 1998)
바바라 슈나이더의 영성 이해는 좀 더 포괄적이다. 그녀는 일반적인 종교의 정의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영성을 정의하고 있다. 영성이란 “자신이 인지 (認知)하고 있는 궁극적인 가치를 향하여 자신을 초월하여 자신의 삶을 통합하려고 할 때 경험되는 그것이다.” 이 정의는 추상적인 지적 체계인 믿음의 내용과 구별된 것으로서, 삶의 정황에서 직접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경험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영성이란 말은 상당히 포괄적으로 넓게 적용될 수 있게 이해되고 있다. 그에 비해, 박재만은 영성을 삼위 일체적이며 신학적으로 이해한다. 그는 영성이란 “삼위 일체적 친교 안에서 사는 각 신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삶을 포함하여, 하나님과 우리의 특수한 내면 관계 (기도, 관상, 사랑의 덕을 쌓아감)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체험 전반을 포괄한다.” 그가 말하려고 하는 바는 영성은 인간적 사회생활을 떠나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상황 안에서 성령의 이끄심에 따르는 것이다. 이러한 영성의 구현인 영성생활은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서 자신의 육체, 마음, 영을 가꾸고 일치시키며, 물질 세계와 인간 사회를 그리스도 안에서 질서 있게 발전시키고 복음화시키는 삶으로 의미한다.박재만, '영적 지도' 카톨릭대학교 출판부 1996)
그리스교 전통에서의 영성이란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즉 자기 밖에 있는 어떤 하나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 럼 자기 자신보다도 자기에 가깝게, 자기 안에 침투하여 충만해 있는 사랑 의 따뜻한 힘으로서의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다.(현대인의 영성-신비가의 숨 '조지 A 말로니' 분도출판사) 하나님을 향해 가는 그리스도인은 일상적 감각이나 지적, 감정적 반응을 초월 한 마음의 깊은 곳에서 그 자신의 자기 중심성이 서서히 정화되어 간다. 욕망이나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진정시키고 모든 것 을 하나님의 뜻에 맡김으로써 하나님과의 친교를 심화해 가는 가운데 이러 한 열린 마음이 자기 것이 되어간다. 이것은 체험되어야 할 것이지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영성이라는 영어 단어는 spirituality인데, ‘영적(靈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4세기 때에 제롬(Jerome)이 처음으로 ‘Spiritualiy’ 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 단어를 포괄적 의미에서 이해하자면, 인간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초월적 실재를 향해 도달하도록 돕는 태도 혹은 신앙실천을 서술하는 용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포괄적이란 표현이 그렇듯이 영성이란 상당히 폭넓은 영적 지향의 태도를 의미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영성이란 단어가 가지고 있는 애매성과 모호성으로 인해 ‘기독교인의 삶’이란 용어를 선호하기도 했다.
카즌스는 영성이란 말을 내면적 차원과 관련하여 이해한다. 그에게 있어 영성은 “전통적으로 ‘영’이라고 불러지고 있는 인간의 내적 차원에 관심을 둔 말로, 인간의 가장 심원한 중심을 의미하며, 바로 이곳에서 인간은 초월적인 차원을 향하여 열려 있으며, 궁극적인 실재를 체험하게 된다.”(유해룡 '영성훈련의 의미와 방법' 장로회신학대학 1998)
바바라 슈나이더의 영성 이해는 좀 더 포괄적이다. 그녀는 일반적인 종교의 정의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영성을 정의하고 있다. 영성이란 “자신이 인지 (認知)하고 있는 궁극적인 가치를 향하여 자신을 초월하여 자신의 삶을 통합하려고 할 때 경험되는 그것이다.” 이 정의는 추상적인 지적 체계인 믿음의 내용과 구별된 것으로서, 삶의 정황에서 직접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경험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영성이란 말은 상당히 포괄적으로 넓게 적용될 수 있게 이해되고 있다. 그에 비해, 박재만은 영성을 삼위 일체적이며 신학적으로 이해한다. 그는 영성이란 “삼위 일체적 친교 안에서 사는 각 신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삶을 포함하여, 하나님과 우리의 특수한 내면 관계 (기도, 관상, 사랑의 덕을 쌓아감)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체험 전반을 포괄한다.” 그가 말하려고 하는 바는 영성은 인간적 사회생활을 떠나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상황 안에서 성령의 이끄심에 따르는 것이다. 이러한 영성의 구현인 영성생활은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서 자신의 육체, 마음, 영을 가꾸고 일치시키며, 물질 세계와 인간 사회를 그리스도 안에서 질서 있게 발전시키고 복음화시키는 삶으로 의미한다.박재만, '영적 지도' 카톨릭대학교 출판부 1996)
그리스교 전통에서의 영성이란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즉 자기 밖에 있는 어떤 하나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 럼 자기 자신보다도 자기에 가깝게, 자기 안에 침투하여 충만해 있는 사랑 의 따뜻한 힘으로서의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다.(현대인의 영성-신비가의 숨 '조지 A 말로니' 분도출판사) 하나님을 향해 가는 그리스도인은 일상적 감각이나 지적, 감정적 반응을 초월 한 마음의 깊은 곳에서 그 자신의 자기 중심성이 서서히 정화되어 간다. 욕망이나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진정시키고 모든 것 을 하나님의 뜻에 맡김으로써 하나님과의 친교를 심화해 가는 가운데 이러 한 열린 마음이 자기 것이 되어간다. 이것은 체험되어야 할 것이지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