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25주 '나'를 넘어 '하나님'께로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룻 3:1-5
1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2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5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응송 | 시 127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서신 | 히 9:27-28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복음 | 막 12:38-44
38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39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0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막 12:43을 묵상하십시오.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 보다 많이 넣었다는 주님의 말씀은 궁극적으로 무슨 의미일까요?
② 룻 3:1, 5을 묵상하십시오. 나오미와 룻의 마음은 각각 누구에게 머 물러 있습니까?
③ 히 9:26, 28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의 자기희생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나'를 넘어 '하나님'께로
'데이비드 화이트'가 쓴 '틸리코 호수"라는 시가 있습니다. 어느 날 호수에 비친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본 후에야 '가짜 자기'를 놓아버리게 된 은총에 대한 찬양입니다.이 높은 곳에서는 모든 것이 이처럼 단순한 것을,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뒤로 밀쳐놓으라.
차가운 수면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와
서툴었던 옛 사랑의 기도를 바치고
당신의 두 팔을 벌려라.
빈손으로 다가온 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호수 속을 바라보리니
거기 흰 눈을 반사하는 차가운 빛을 보리라.
당신 자신의 진짜 얼굴 모습을
보수주의자들은 절대적 진리를 찾고, 자유주의자들은 '진짜'이며 '진정'한 무엇인가를 찾는다고 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진리를 목말라 하며 진리를 찾아 나선 모습을 풍자한 말인데, 어거스틴은 자신의 '고백록'에서 그럼에도 결국 진리에 도달하지 못하고 만 씁쓸한 자화상을 이렇게 자인합니다. "뒤늦게 나는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아름다움이지만 여전히 새로운 아름다움입니다. 뒤늦게 나는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안에 계셨지만, 나는 바깥에 있었습니다." 보수주의자건 자유주의자건 '가짜 자기'를 놓아버리는 은총이 없이는 결국 진리에 도달하지 못하고 '당신 바깥' 즉 '주님 바깥에' 머물 수밖에 없음을 어거스틴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 자신만이 나의 기준이 되는 자기중심성,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겪는 번번한 오류는 내 안에 계신 주님을 알아채지 못하고 표면적 세계만 떠돌게 되는 것입니다. 간혹은 자신 속으로 후퇴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대부분은 자기의 '에고(ego)' 즉 '가짜 자기' 속으로 들어가고 맙니다. 그러면 우리의 진짜 얼굴 즉 진짜 자기는 어떻게 찾을 수 있는 것일까요? 사도 요한에 따르면 우리는 이미 진짜 자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라"(요일 2:21) 대부분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진짜 자기를 알고 있습니다. 다만 끊임없이 주님의 바깥을 배회하며 가짜 자기를 강화하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우리에게 가짜 자기를 끊임없이 강화하며 거기에 안주하고 있는 사람을 보여주고, 이어서 한 가난한 과부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녀가 자신의 전부를 포기함으로서 그리스도 안으로 깊이 들어가 거기서 진짜 자기를 찾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첫째 이야기는 서기관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 막 12:38-40
당시는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에 서기관은 오늘날의 법조인 역할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이들 서기관들의 행태를 세 가지로 묘사하십니다. 첫째, 그들은 기다란 옷을 입고 나다니며 시장에서 인사를 받는 것과, 회당이나 잔치 자리에서 윗자리에 앉기를 즐겨했습니다. 둘째, 그들은 과부의 재산을 삼켰다고 합니다. 공동번역은 '등쳐먹었다'고 번역했습니다. 셋째, 서기관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기도를 길게 했습니다. 길게 기도하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지만, 그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길게 기도했습니다. 즉 그들은 가짜 자기를 강화하고 있었고, 스스로 그 가짜 자기에 속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이러한 신앙행태를 엄중히 경고하셨습니다. 40절의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이 말씀을 공동번역 성경은 좀 더 분명하게 번역해놓았습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그만큼 더 엄한 벌을 받을 것이다" 두려운 말씀입니다. 지금 사람들에게 대우받는 위치에 있다고 해서 절대로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세상은 나의 가짜 자기를 인정해주지만 하나님을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가난한 과부 이야기입니다.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 막 12:41, 42
두 번째 이야기에 나오는 이 과부는 예수님께서 먼저 언급하신 서기관과 가장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존재입니다. 서기관은 사회 고위층에 속하고, 과부는 가장 하층민에 속합니다. 아무도 이 과부와 비슷한 운명으로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서기관으로 살든지 과부로 살든지, 그게 다 이 세상 안에서의 한 평생이라는 사실입니다. 하이데거 식으로 표현하면 서기관이나 과부나 모두 '세계-내(內)-존재'일 뿐입니다. 서기관이나 과부나 세계 안에서 먹고 배설하고 몰입하며 살아가는 실존은 모두 동일한 것인데, 동일한 '세계-내-존재' 그 다음의 세계에 눈떠야 비로소 하나님 말씀이 마음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를 좀 더 따라가 보겠습니다. 당시 헌금함이 있던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는 여인의 뜰입니다. 나팔처럼 생긴 13개의 헌금함이 놓여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자진해서 헌금하는 헌금함입니다. 부자들은 많은 돈을 넣은 반면에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 동전을 넣었다고 합니다. 렙돈은 각주에 따르면 헬라 동전의 명칭인데, 그것을 로마 화폐로 바꾸면 한 고드란트이고, 그 돈의 가치는 한 끼 식사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이 가난한 과부가 헌금한 두 렙돈에 대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 막 12:43, 44
사실 표면적인 눈으로 보면 부자들의 헌금과 가난한 과부의 헌금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시각으로 이 헌금을 판단하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보신 것은 헌금의 액수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신앙의 본질적인 태도를 보셨습니다. 부자들은 자신들의 많은 소유 중 아주 적은 일부를 드리고 있지만, 가난한 과부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털어 넣었습니다. 신앙이란 자신의 전부를 거는 모험입니다. 과부는 자기의 전 재산과 함께 자기 자신까지 드리고 있지만, 부자들은 소유의 일부를 드리며, 정작 자신은 헌신에서 제외시키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제외하고 드리는 봉헌이란 모래로 밥을 지어 손님을 대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무엇을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요구하십니다. 자신의 전 존재적 실존을 걸지 않는 신앙이란 감상적 정신의 유희나 포장된 세속적 욕망, 혹은 경건한 종교 놀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취미가 아닙니다. 자신의 전 존재의 실존을 문제 삼지 않는 신앙은 마음을 공허하게 하고,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서기관들을 비판하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여기 부자들과 서기관들은 같은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자기 전 존재를 걸기를 기피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짜 자기를 즐기며, 겉멋이나 부리는 종교적 난봉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허례의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허식을 좋아해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는가 하면, 허영심이 강해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탐하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합니다. 게다가 허욕이 과해 과부들의 가신을 삼키면서, 거룩하게 보이고는 싶어서 기도를 오래합니다. 천상 속물들이 성인의 허상을 쫓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노라 하면서, 하나님께 자기의 전부를 걸지 않는 자는 불가불 이렇게 허례, 허식, 허영, 허욕, 허상에 빠지고 맙니다. 이게 바로 가짜 자기입니다. 이것이 허무요 죄이며 죽음입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하나님께 존재 전체를 드리고 있는 걸까요? 혹 삶의 일부를 드린 것으로 만족하고 그 대가로 가짜 자기를 누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허무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속은 것입니다.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부자들을 비판하신 것은 껍데기만 남은 유다 종교를 비판하신 것입니다. 언제 예수님이 천국 문이 넓다고 말씀하신 적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바늘귀만큼이나 좁다고 말씀하셨고, 좁고 협착해 찾는 이가 적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천국 문으로 들어가려면 가짜 자기가 포기되어야 합니다. 과부처럼 자기 자신을 다 털어버리고, 붙잡고 있던 연줄마저 다 놓아버리고, 백 척 장대 위에서 한 걸음 내딛듯이 하나님께 자신을 던지는 사람에게는, 그 동안 치렁치렁 두르고 있던 장신구들이며, 그토록 목말라 하던 일체의 물상들이 더 이상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게 됩니다. 저 기다란 옷이며, 권위며 하는 것들이 눈앞에 도래한 천국 앞에서 다 뭐란 말입니까? 부질없는 허상이요, 아침에 피었다 저녁이면 지는 잠시 잠깐의 꽃과 같은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디 물상(物像)만 그렇겠습니까? 그토록 아름답게 치장하던 우리 몸 역시, 덧없이 무너지고 부서지고 흩어지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원효대사가 말한 그대로입니다. "이 몸을 이루고 있는 흙, 물, 불, 바람 네 요소는 언제까지나 잡아 둘 수 없으니, 오늘이라 하였더니 벌써 저녁이라. 어언 아침으로 기울었구나!" 그래서 전도서 기자 역시 이렇게 조언합니다.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 그릇이 부서지고, 샘에서 물 뜨는 물동이가 깨지고, 우물에서 도르래가 부숴지기 전에, 네 창조주를 기억하여라"(전 12:6 표준 새 번역) 그러고 보면 자기 몸이 부서지기 전에 모두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과 합해진 과부의 선택은 얼마나 지혜로운 것입니까? 오늘 구약성경에 이 과부와 같은 지혜로운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 룻 3:1-5
이 말씀에 나오는 사람들 중 어느 한 사람도 이기적으로 자기를 지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오미의 계획은 희생적이고, 룻의 실행은 순종적이고, 보아스의 대응은 인격적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은 신앙적입니다. 나오미는 '며느리의 행복을 위해(룻 3:1)' 그녀를 기꺼이 보아스에게 보내줍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말씀대로 순종해(룻 3:5)' 보아스에게로 가 자기의 미래를 맡깁니다. 보아스는 기꺼이 룻의 기업 무를 자가 되어 그녀 안에 메시아 탄생의 길을 열어줍니다.(룻 3:6-13) 이렇게 대의를 위해 자기를 희생했더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진짜 자기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써내려가셨습니다.(룻 4:13, 17) 자기를 몽땅 희생한 자기희생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예수님이십니다. 서신서의 말씀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 사실을 이렇게 증언합니다.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 히 9:27, 28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그 죽음은 단 한 번이고, 죽음의 이유는 죄입니다. 그래서 죽음 이후엔 심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비극적인 죽음을 말한 후에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언급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예수님의 모습에는 '고난당하는 종의 이미지'가 깃들여있습니다. 이사야 53:12에 나타난 고난당하는 종은 유다에서 베벨론으로 전쟁포로로 끌려가 고난당하는 유다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포로에서 해방되어 돌아올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른 죄악의 대가를 두 배로 갚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당한 고난을 대가로 후손들은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온 후손들에 의해 '많은 사람의 죄를 위해 고난당한 종'으로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히브리서 기자는 '많은 사람의 죄를 지고 고난당하신 종'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합니다. 주님은 당신을 희생해 우리 모두에게 생명이 들어오게 하셨습니다.사람들은 애써 예복을 길게 늘어뜨리고 그것으로 자기를 위장하고 과시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호화로운 예복으로 감춘다 해도 인간은 그 본질에 있어서 벌거벗은 존재입니다. 차라리 호화로운 옷 안에 감추어진 허례와 허식과 허영과 허욕의 가짜 자기를 포기하고, 과부처럼 룻처럼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기꺼이 자기를 드릴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자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진짜 자기는 그리스도의 바깥을 배회하는 자기가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영원한 자기입니다. 그는 자기의 중심을 열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진짜 자기를 뜻하는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용어는 '속사람'이고, 가짜 자기는 '겉사람'입니다. 평생을 역사적 예수 연구에 매진한 '월터 윙크'라는 신학자는 '속사람'을 '참사람'이라고 재해석 했습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은 가짜 자기로서의 '나'를 넘어 내 심장에 그리스도께서 뜨겁게 살아계신 '진짜 자기' 즉 '참사람'으로서 살아가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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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그리스도 안에서 진짜 자기를 발견하고 새로워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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